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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이 빽빽이 들어선 장항송림. |
‘완연한 봄’이란 말을 3월이 거의 다 지나서야 쓸 수 있게 됐다. 남쪽에선 꽃소식이 들려오며 봄이 당도했음을 알리고 있지만, 다른 곳은 한겨울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이 쉽게 떠나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친다. 남쪽은 매화, 산수유 등이 만발했지만, 윗동네는 슬며시 그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시나브로 봄은 올라오고 있다. 뭍뿐 아니라 물에서도 봄 소식이 전해진다.
다만, 산뜻해야할 것 같고, 화창해야할 것 같은 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장렬하다란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분명 화사한 봄과 다르게 맞는 봄도 있는 법이다.
충남 서천의 봄은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서천에서도 북쪽인 마량에서 이 장렬한 봄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한겨울 한반도 남쪽 제주를 시작으로 전남 여수와 진도, 해남 등을 거친 동백꽃은 날이 포근해지는 3월이 되면 전북 고창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서천 마량까지 올라온다. 동백꽃의 북방한계선이 마량이다. 이에 마량 동백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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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의 동백은 높이가 2∼3m에 불과하다. 붉은 동백이 시들지 않은 채 땅으로 낙하해 붉은 카펫을 이루고 있다. |
남쪽의 동백과 마량의 동백은 눈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해안 언덕에 자리 잡은 마량 동백나무들은 8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령이 300∼400년 정도 됐지만, 높이가 2∼3m에 불과하다. 남쪽의 동백나무라면 6∼7m 정도 자랐을 테다. 북쪽이기에 날이 차고, 해풍이 강해 위로 자라기보다는 옆으로 가지를 뻗었다. 키 작은 나무여도 붉은 동백은 풍성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뒤 시들지 않은 채 장렬하게 땅으로 낙하해 붉은 카펫을 이룬다. 동백나무숲 정상엔 ‘동백정’이라는 누각이 있다.
이곳에선 바다 풍경뿐 아니라 지척에 있는 섬 오력도 너머로 지는 일몰이 일품이다.
이곳에 동백나무숲이 조성된 데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 지역을 다스리던 마량첨사 꿈에 커다란 꽃 뭉치가 바닷가에 떠내려왔다. 바다의 신이 첨사에게 수많은 원혼을 달래고, 사고 없이 고기를 잡으려면 꽃 뭉치를 심으라고 했다. 꿈에서 깬 첨사가 바닷가로 가서 꽃 뭉치를 찾아내 심고 가꾼 곳이 오늘날 동백나무 숲이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남편과 자식을 바다에서 잃은 노파가 매일 바닷가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날 파도를 타고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본 노파는 용왕에게 소원을 빌었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동백 씨앗을 주면서 잘 가꾸면 소원성취할 것이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꿈을 깬 노파는 꿈속에 노인과 만났던 곳에 달려가 보니 정말 동백씨가 있었고, 이를 심어서 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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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특화시장은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규모의 수산물 유통량을 자랑한다. 1층 매장에서 주꾸미와 물고기를 사면 2층 식당에선 두레박으로 생선을 올려받아 요리를 한다. |
어느 전설이든 험한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는데서 기인한다. 이맘때 어민들이 사고를 무릅쓰고 험한 바다에 나가 잡는 것은 주꾸미다. 그것도 ‘알배기 주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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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수산물을 살 수 있는 서천특화시장(위 사진). 서천에선 이맘때 ‘알배기 주꾸미’를 맛볼 수 있다. |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때, 주꾸미는 몸통 속에 쌀알처렁 생긴 알을 가득 채운다. 5∼6월 산란기를 앞둔 이맘때 주꾸미는 살이 가장 통통하고 쫄깃쫄깃하다. 만약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면, 주꾸미 암컷은 산란 후 알 주변을 떠나지 않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보호한 후 그 삶을 마감한다. 그물에 걸린 주꾸미는 마량포구나 홍원항 주위 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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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은 광어로도 유명하다. 자연산을 육안으로 구분하려면 배 부분이 흰 광어를 찾으면 된다. 양식은 사료값 등으로 무게 3㎏ 정도가 대부분이다. 3㎏보다 크고 배가 희면 자연산 광어일 가능성이 크다. |
시내에서 주꾸미를 먹고 싶다면 서천특화시장을 찾으면 된다. 수산물 유통량으로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주꾸미 외에 서천에서는 광어도 유명하다. 양식 광어에 익숙한데, 자연산을 육안으로 구분하려면 배 부분이 흰 광어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양식은 사료 값 등으로 무게 3㎏ 정도가 대부분이다. 3㎏보다 크고, 배가 희면 자연산 광어일 가능성이 크다. 1층 매장에서 주꾸미와 물고기를 사면 2층 식당에선 두레박으로 생선을 올려받아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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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장항스카이워크는 키 큰 소나무 높이에 맞춰 지그재그로 바다까지 이어진 전망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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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마지막 기둥은 갯벌 위에 있다. 썰물 땐 갯벌 위에 서 있지만, 밀물 땐 기둥이 물에 잠겨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
서천의 서해 풍광을 보려면 장항스카이워크로 향하면 된다. 해송이 빽빽이 들어선 장항송림에 자리 잡은 스카이워크는 키 큰 소나무 높이에 맞춰 지그재그로 바다까지 이어진 전망대다. 높이가 15m, 길이는 286m에 달한다. 계단을 오른 후 아래가 훤하게 보이는 구멍 뚫린 철망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아찔함에 기둥을 붙잡게 된다. 바람까지 분다면 긴장감은 더해진다. 전망대 마지막 기둥은 갯벌 위에 있다. 썰물 땐 갯벌 위에 서 있지만, 밀물 땐 기둥이 물에 잠겨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서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