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고한경의 법률 톡톡] 스타트업·벤처 아이디어 공개 전 이것만은 해라

 

얼마 전 대학생이 찾아와 답답함을 호소했다. 기업 공모전에 참여했다가 탈락했는데 얼마 전 해당 기업에서 자신이 아이디어를 차용한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얘기였다. 자료를 검토해보니 ‘어렵겠다’ 싶었다. 아이디어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도용했다고까지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대학생이 법적으로 맞붙을 때 대학생이 그 길고 어려운 과정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 IR을 하거나 사업제휴를 하려고 아이디어를 공개할 때에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사업 제휴를 위해 기업에 아이디어를 공개했는데 상대방이 정작 계약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이디어만 가져다 쓰는 것이다. 핵심 아이디어가 도용 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리지만 소송에 가도 입증은 쉽지 않다. 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사전작업’들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보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요건은 엄격하다.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라는 것이 입증돼야 영업비밀로 인정받는다. 쉽게 말해 아이디어의 경제적 가치가 증명되고 해당 아이디어가 비밀로 관리돼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입증해야 소송에서 맞붙을 수 있을만하다는 이야기다.

소송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면 좋겠지만 가장 기초적인 비밀유지계약서(Non Disclosure Agreement‧NDA)의 체결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상호간에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하는 기초적인 문서인데 대부분의 중소·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에게 NDA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하나는 ‘계약이 틀어지면 어쩌지’하는 노파심, 또 하나는 ‘설마 대기업이 그러기야 하겠어’라는 안일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핵심 아이디어 몇 개로 승부를 보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굵직한 계약’이라는 단꿈에 설레어 자칫 회사를 송두리째 잃게 되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NDA가 어렵다면 ‘비밀’이라는 사실이라도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중요 문서에는 ‘영업비밀’ 도장을 찍고 “이 자료는 당사의 영업비밀로 보호되고 있다”는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이메일 등을 통해 자료를 건네줄 때도 마찬가지다. ‘객관화’되지 않은 비밀은 법정에서 영업비밀로 인정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강조는 도용 예방 효과도 있다. 비록 을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준비돼 있고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인식하게 해 아이디어 도용보다는 제값을 주고 활용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협상의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중소기업의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곤 하지만 실제 사업현장에서 중소기업이 ‘비밀유지계약서를 체결해달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다. 투자나 사업제휴를 하는 ‘갑’들이 먼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게 비밀유지계약서를 체결하겠다고 제안하는 ‘매너’가 자리잡기를 기대해본다.

유앤아이파트너스 법률사무소 고한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