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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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짧아진 봄… 늦기 전에 부산행

산복도로에서 夜∼노올자/ 꽃에 갇힌 부산항대교… 맘 속에 저장! /
계절마다 각기 특색이 있지만 봄에는 주위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탄하게 된다. 겨우내 무채색 풍광에 익숙했던 우리의 시선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피는 한 송이 꽃에 설렘을 느낀다. 곳곳에서 봄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어느새 봄이 한창이다. 자칫 이때를 놓치면 겉옷이 거추장스러운 여름이 다가온다. 한창인 봄을 느끼지 못한 채 떠나보낸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때다.

이맘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봄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것이다. 막연한 느낌만은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0∼2017년 봄 지속 기간은 평균 77.4일로 1970년대(1973∼1979년) 평균 92.1일과 비교해 보름가량 줄었다. 2000년대(86.1일)와 비교해도 봄이 열흘가량 짧아졌다. 봄 지속 기간이란 하루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올라간 뒤 이후 떨어지지 않은 날(봄의 시작)부터 하루 평균 기온 20도 이상 올라간 뒤 떨어지지 않은 날(여름 시작) 전까지를 말한다. 아쉽게도 실제 봄이 짧아지고 있고, 더운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갈수록 짧아지는 봄을 품고 싶다면 해가 떠있는 낮으로는 부족할 듯싶다. 후딱 지나가는 봄은 밤에도 빛을 발한다. 밤과 낮의 특색 있는 봄이 기다리는 곳은 부산이다. 다채로운 색이 있는 한낮의 봄과, 화려한 야경이 빛을 발하는 한밤의 봄이 기다린다.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퍼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서핑을 즐기고 있다.
바다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지역 중 부산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아직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의 날씨는 아니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풍광을 즐기는 정도면 충분하다. 부산의 바다 풍광은 단순히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인 자연만의 풍경이 아니다. 대도시답게 휘황찬란한 마천루의 모습도 풍광의 한 축을 담당한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어우러진 부산의 봄은 어느 곳보다 화려함을 자랑한다.

부산 오륙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인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오륙도를 기준으로 남해와 동해가 나뉜다.
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부산의 바닷길은 ‘부산갈매기’를 활용해 갈매기와 길을 합쳐 갈맷길로 부른다.

부산을 가보지 않은 이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오륙도가 부산의 봄을 느끼기 위한 갈맷길의 출발점이다. 오륙도는 안개가 끼는 날이나 밀물일 때는 6개로 보였다가 썰물일 때나 맑은 날은 5개로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었다. 하지만 이보다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인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는데 육지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부른다. 이 중 방패섬과 솔섬이 동쪽에서 보면 떨어져 있는 것 같고, 서쪽에서 보면 한 섬으로 보여 오륙도로 부르는 것이다. 오륙도를 기준으로 남해와 동해가 나뉜다. 오륙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승두말은 말안장처럼 생겼다고 ‘승두마’라고 부르는 것이 승두말로 됐고, 지역주민들은 ‘잘록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에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스카이워크가 놓여져 있다. 35m 높이 해안절벽 위에 유리판 24개를 말발굽형으로 이어놓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함은 각오해야 한다.

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에서 오륙도를 보면 섬들이 겹쳐 보여 두 개의 큰 섬으로 보인다. 오륙도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야 가능하다. 오륙도 동쪽에서 접근이 가능해 6개의 섬을 모두 볼 수 있다. 6개의 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면 굳이 유람선을 타지 않고, 서쪽에 있는 방파제 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방패섬과 솔섬이 연결돼 있는 모습의 5개의 섬을 볼 수 있다. 스카이워크 반대편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에 오르면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만나게 된다.

오륙도 스카이워크 부근의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에 오르면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만난다.
오륙도부터 해안산책로를 따라 가는 갈맷길의 명칭은 이기대 해안산책로다. 이기대라는 이름은 두 명의 기생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 당시 두 기생이 수영성을 함락한 왜장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기생들의 뜻을 기려 이기대가 아닌 의기대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오륙도에서부터 해안 절경을 보면서 걷다 보면 부산에서 가장 화려한 현대 외관을 가진 마린시티가 수영만 건너편으로 보인다. 그 옆으로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놓여 있어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부산 송도해상케이블카에서는 날이 좋을 때 일본 대마도를 볼 수있다.
좀더 색다르게 바다 풍광을 보고 싶다면 송도해상케이블카를 권한다. 바다 위를 가로질러 가는 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동편 송림공원에서 서편 암남공원까지 1.62㎞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송도케이블카는 이미 1964년 설치돼 운행되다가 시설이 노후해 1988년 철거된 바 있다. 제1호 공설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해 6월 최신 시설로 설치돼 운행을 재개한 것이다. 과거 거북섬에서 비치힐모텔까지 약 420를 오갔던 옛 해상케이블카보다 운행 거리가 4배가량 늘었다. 편도로 약 8분30초면 반대편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최고 86 높이의 케이블카에서는 날이 좋을 때 일본 대마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맘때는 미세먼지 등의 영향으로 대마도를 보기 쉽지 않다. 다만 큰 배들이 바다 한가운데 정박해 있는 독특한 ‘묘박지’의 모습은 볼 수 있다.

오륙도에서 시작해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걷다 보면 부산에서 가장 화려한 현대 외관을 가진 마린시티가 수영만 건너편으로 보인다. 그 옆으로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놓여 있어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왕복으로 케이블카를 타도 되지만, 편도로 암남공원까지 간 뒤 1시간 30분가량 바닷길인 볼레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것을 추천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길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 길을 걸어 송도해수욕장까지 가는 것이다. 볼레길을 걸으면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일부 구간 파도가 강할 때 직접 맞을 수도 있다. 특히 교과서에서 본 정단층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분리됐다는 증거인 처트파편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처트파편은 생물의 잔해가 쌓이거나 물에 녹아 규질 성분이 가라앉아 만들어지는데, 송도 볼레길을 이루는 하부다대포층 역암 속에는 이 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 일본 열도에 분포하는 백악기 퇴적층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어,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와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갔고, 그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차 동해가 됐다는 것이다. 송도해수욕장까지 이르면 스카이워크가 기다린다. 수면에서 5.5∼8 높이로 설치돼, 오륙도 스카이워크보다 낮지만, 길이는 100m를 넘어 더 길다. 바다 위를 걷는 맛이 더 낫다.

이맘때 부산을 찾으면 밤에도 부지런을 떠는 것이 좋다. 숙소에서 편히 쉬기보다는 봄을 대표하는 벚꽃과 부산의 야경이 어우러진 환상의 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맘때 화려한 부산의 봄 야경을 즐기려면 산복도로로 향하면 된다. 산복도로는 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말하지만, 부산의 산복도로는 서민들의 힘들었던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6·25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이 살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 거처를 마련했고, 향후 그 중간에 길이 놓인 것이다.

부산 산복도로에서는 서면 북항을 비롯해 부산항대교, 부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친환경 스카이웨이 주차장에 조성된 전망대는 벚꽃 너머로 건물들의 불빛과 부산항대교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봄에만 마주할 잊지 못할 야경을 선사한다.
유치환우체통에서 시작해 친환경 스카이웨이 주차장을 거쳐 역사의 디오라마까지 이어진 길에선 서면 북항을 비롯해 부산항대교, 부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중 친환경 스카이웨이 주차장에 조성된 전망대는 벚꽃이 눈 내리듯 흐드러지게 펴 있어 봄 야경의 백미로 꼽힌다. 벚꽃 너머로 건물들의 불빛과 부산항대교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봄에만 마주할 잊지 못할 야경을 선사한다.

부산 아홉산숲을 찾은 방문객이 빽빽한 대나무숲에 들어서면 절로 감탄을 내지르게 된다.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 부산에서 푸른 바다만 보기가 싫증 난다면, 초록 세상인 기장의 아홉산숲으로 향하자. 아홉 개의 골짜기를 품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아홉산숲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4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숲이다. 남평 문씨 집안이 소유한 아홉산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맹종죽, 왕대, 서어나무가 무리지어 자란다. 이 숲을 대표하는 수목은 금강송과 대나무다. 방문객이 수령 200∼300년의 금강송숲을 지나, 햇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빽빽한 대나무숲에 들어서면 절로 감탄을 내지르게 된다. ‘인생샷’을 남기기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20∼30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씨 집안은 아홉산숲을 지키기 위해 많은 풍파를 겪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목재 공출을 피하기 위해 놋그릇을 일부러 숨기는 척하면서 붙잡혀 그릇만 뺏기고 금강송 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6·25전쟁 때는 집안 어른이 빨치산에 붙잡혔지만, 숲을 가꾸느라 거칠어진 손을 보고 ‘노동하는 동무’로 생각해 풀려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조상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숲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부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