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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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의세상속물리이야기] 먼지의 두 얼굴

영양분 실어 날라 생태계 풍부하게 유지 / 오염된 미세먼지, 건강 해치는 원인 되기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을 흔해 빠진 먼지에 빗댄 것이다. 먼지의 이런 이미지는 과거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상중임을 표시할 때 얼굴 부위에 먼지를 뿌렸다고 한다. 가장 흔하고 비천한 먼지를 몸에 뿌림으로써 상을 당한 참담함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먼지는 정말 흔하다. 그런데 먼지가 정말 해롭고 나쁘기만 한 것일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먼지가 지구의 생태계에서 수행하는 놀라운 역할을 고려하면 먼지는 오히려 예찬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가령 사하라사막에서 형성되는 거대한 모래 먼지는 바다에 철분을 공급해 해양 생태계를 풍부히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에서 발현한 황사는 여러 대륙의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먼지를 추적하는 과학자들은 북극 얼음 속에 갇힌 먼지를 통해 먼지 이동의 연대기를 밝혀내고 우주에서 날아오는 먼지를 채집해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밝혀낸다. 먼지는 과학자들이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창문인 셈이다.

그래도 최근 한반도를 수시로 뒤덮는 미세먼지는 꺼림칙하다. 크기가 2.5㎛보다 작아 폐 속으로 쉽게 들어가는 초미세먼지는 말할 것도 없다. 먼지의 발생은 사막의 모래 폭풍이나 화산, 소금 먼지를 만드는 바다처럼 자연적인 요인이 주를 이루나 인류의 산업 활동이나 교통수단에 의해 발생하는 먼지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다.

비산된 먼지 중 크기가 큰 먼지는 중력의 영향으로 곧 땅에 떨어진다. 그렇지만 크기가 수 ㎛에 불과한 미세먼지는 공기에 의한 저항력의 영향이 커지면서 떨어지는 속도도 미미해진다. 따라서 이 작은 먼지는 바람에 손쉽게 올라타 오랫동안 대류권에 머물며 바다를 넘어 운반될 수도 있다. 특히 인간의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먼지는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형성되는 먼지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그만큼 지구의 대기에 오래 머물며 더 멀리까지 전파된다.

미세먼지의 또 다른 문제는 먼지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정육면체 형상의 먼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각 변의 길이를 두 배로 늘리면 각 면의 면적은 4배, 부피는 8배 증가한다. 즉 부피 대비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거꾸로 먼지의 크기가 줄어들면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가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물리화학적 작용은 물질의 표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잘게 간 팥빙수의 얼음은 커다란 얼음 조각보다 표면적이 훨씬 커 그만큼 더 빨리 녹는다. 같은 맥락으로 표면적의 비중이 높은 미세먼지의 반응성은 일반적인 먼지보다 더 강해진다. 오염물질을 함유한 미세먼지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처럼 내린 봄비가 대기 중 미세먼지를 시원하게 씻겨 내렸다. 미세먼지로 뒤덮이는 날이 많아질수록 비를 더 바라게 된다. 그런데 비구름이 만들어지려면 대기 중 먼지 입자가 수증기가 응결되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먼지에서 비롯된 비가 대기 중 미세먼지를 씻겨내 다시 지표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먼지는 지구의 물의 순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먼지가 담당한 중요한 역할은 인간이 만든 오염된 미세먼지가 대신하게 놓아둘 수는 없다. 미세먼지 저감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