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금전 문제로 속이고 속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금전 사기 피해자 10명 중 7명가량(66.2%)이 친구나 선후배, 친·인척 등 지인에게 당했다.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관계의 신뢰’를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는 사기 행각도 빈번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예사인 정부나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방심하다 뒤통수 맞기 십상인 나라다. ‘사기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결국 가까운 사람조차 함부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를 조성한다. 그만큼 사기 방지를 위한 이중 삼중의 각종 잠금장치를 만드느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치솟게 된다. 전문가들은 사적 영역의 경우 ‘인정’에 의존한 거래 관행에서 탈피하고, 공적 영역은 리더십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8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기 피해(추정) 건수는 2012년 33만8000여건에서 2016년 51만500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 다만 피해 총액(추정)은 같은 기간 3조9291억원에서 2조3804억원으로 줄었다. 이는 소액 피해자가 많았다는 뜻으로 저소득층과 서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기준으로 사기수법을 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비율은 33.8%에 불과했다. 반면 친구와 선후배 등 지인에게 당했다는 피해자가 57.1%로 가장 많았고, 친·인척에게 속았다는 피해자도 9.1%였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이들 피해자 중 상당수(58.3%)는 특히 ‘그럴듯한 말솜씨’에 속아 넘어갔다. 이 수법에 당한 사람의 비율은 2012년 43.3%에서 4년 만에 15.5%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면 한때 기승을 부린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에 당한 사람의 비율은 같은 기간 16.6%에서 8.2%로 반 토막 났다.
고려대 김윤태 교수(공공사회학)는 “서양은 법률적 문서를 통한 ‘형식적 계약’을 하지만 우리는 인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적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기적·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관이 확산된 지금은 장기적 인간관계를 추구하던 과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즉 개인 간 사회적 관계의 깊이와 수준이 갈수록 얕고 낮아지는 ‘저신뢰 사회’에선 사람들이 입으로 한 약속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풍토 속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기 범죄자 수도 2000년 5만275명에서 지난해 6만8000명선으로 급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대법관도 “금전 거래를 함에 있어 교과서대로 하지 않고 이른바 ‘유도리’(융통성) 있게 하자며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문화가 결국 사기 범죄를 양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어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 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 선고 장면은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혐의에 대해 철저히 거짓말로 일관해왔음을 확인시켜줬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권력 상층부에서 붕괴된 신뢰는 온 국민을 자괴감에 빠뜨렸다. 이는 경우에 따라 사회에 도덕적 해이 현상을 부추기기도 한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는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면 결국 세상에 대한 신뢰를 더욱 잃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면서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제도에 대한 신뢰 중 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것은 결국 후자”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수사와 재판을 받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야말로 사회적 신뢰 파괴의 전형”이라며 “권력자가 점점 더 커지는 힘에 비례해 책임지지 않는 상황, 책임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상황이야말로 개인 간 신뢰 회복에 앞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희 서울변호사협회장도 “사기 범죄자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중형을 선고받아 마땅하지만 사기로 가로챈 돈으로 전관 출신 등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집행유예로 나오는 모습을 종종 본다”면서 “결국 국민도 반감을 갖고 좌절하다가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