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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두 번 울리는 '단시간 근로제'] 눈칫밥도 서러운데…두 시간 단축근무에 임금 절반 '싹둑'

된서리 맞은 영세사업장 근로자 / 중기일수록 수당 설정 비율도 높아 / “포괄임금제 땐 삭감해도 불법 아냐”/ 쪼그라든 임금에 단축 근무도 포기 / 환경 열악한 사업장 ‘빈익빈’ 심화 / 포괄임금제 관행 개선 시급 목소리 / 고용부 “전액 삭감 않도록 권고할 것”
“정부는 육아와 관련된 새로운 제도를 내놓기만 할 뿐 기존 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은 방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하며 임금이 절반가량 깎인 A씨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초등 1학년 부모 10시 출근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시간 근로제도의 문제점은 개선하지 않고 또 다른 단시간 근로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에게는 시간에 비례해 줬던 임금만 깎고 결혼지원금 등 시간 비례 성격이 아닌 급여는 원래대로 주는 게 맞다. 하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시간 비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급여를 줄어든 시간만큼 깎았다.

정부는 공무원 인사복무 규정에 수당별 시간비례 여부를 꼼꼼히 규정해 공무원 수당은 제대로 챙겨주면서 민간 사업장에는 수당별 기준조차 제시한 적이 없다. 이를 지적한 세계일보 기사(2018년 3월 19일자 1·10면 참조)가 나간 뒤 고용노동부는 현장의 사례를 수집해 수당별 시간비례 여부를 따지고 사업장에 지침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도를 이용하며 불이익을 당하고도 침묵했던 근로자들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포괄임금제 사업장… 단축 근무 시 임금 ‘싹둑’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대다수 근로자에게 ‘그림의 떡’이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장에서도 그간 용기를 내 사용한 근로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내 눈치와 “사용할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주변의 부러움을 동시에 받으면서 각종 불이익까지 감수했다.

A씨가 그중 한 명이다. 그가 겪은 임금 불이익은 고용부에서 수당별 시간비례 여부를 따져 지급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A씨는 매월 기본급 180만원에 연장과 야간, 휴일 등 시간외수당 120만원을 합한 금액을 월급으로 받았다. 그는 이른바 포괄임금제가 도입된 사업장에서 근무했다.

포괄임금제는 초과 근로를 하든 안 하든 매월 시간외수당을 고정임금으로 주는 제도로,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거나 업무 성격상 근무관리를 근로자의 재량에 맡긴 직군의 임금계산 편의를 위해 도입됐다. 법적 기반을 토대로 한 제도가 아니라 법원 판례를 통해 인정된 사업장의 관행이다.

A씨는 단축 근무 전에도 초과근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 A씨의 회사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건 일종의 ‘보험’ 성격이었다. 언젠가 초과근로가 발생할지 모르니 추가 부담 경감을 위해 임금에 이 항목을 미리 반영한 것이다.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면 연장근로를 해도 추가 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

문제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단시간 근로자는 연장 근로를 할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 고정임금에 포함됐던 시간외수당이 전액 삭감된 점이다. 급여 300만원 중 120만원이 날아간 상태에서 기본급인 180만원마저도 줄어든 시간(25%)만큼 깎였다. 그렇게 대폭 감액된 임금 135만원에 정부 지원금을 더해봤자 본래 임금의 절반밖에 안 됐다. A씨는 단축근무 2개월 만에 제도 이용을 포기했다.

한 노무사는 “포괄임금제로 계약한 이상 육아기 단축을 하면 연장근무를 하지 않게 돼 사측에서 가산수당을 모두 삭감해도 현행 제도상 불법이 아니다”며 “다만 매월 똑같이 받은 금액을 고정임금으로 보고 고용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을 수는 있으나 이 경우 회사와 법적 분쟁을 해야 해 근로자에게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중소 사업장일수록 임금 불이익 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무직 근로시간 실태와 포괄임금제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이 2016년 고용부의 임금결정 현황조사에 참여한 100인 이상 사업장 3000곳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100∼300인 미만 사업장의 44.8%가 일반 근로자를 대상으로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00∼999인 사업장의 도입률은 33.3%, 1000인 이상은 38.1%였다.

100인 미만 사업장의 실태는 조사되지 않았다. 앞선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전체 기업의 40%가량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 사업장이라도 시간외수당이 설정된 비율에 따라 육아기 단축 때의 상황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수당 비율이 10∼15% 수준인 사업장은 전액 삭감되더라도 정부 지원금을 더하면 원래 임금이 보전된다.

정부 지원금은 통상임금(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기본급이 작고 시간외수당 비율이 높게 설정된 근로자는 임금에서 깎이는 부분이 많고 정부 지원은 적다. 고용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일수록 지원금도 줄어드는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학자와 노무사, 정부 관계자조차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대체로 기본급이 낮게 설정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기본급은 각종 가산수당을 책정하고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를 내는 기준이 되다 보니 기업주로서는 최대한 낮추려고 한다. 기본급이 낮을수록 기업의 추가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인력이 적은 중소·영세 사업장 근로자는 자리를 통째로 비우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렵다. 그나마 육아기 단축근로 등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도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근로자 육아휴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기업 특성에 맞는 제도를 연구하고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고용부로부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을 받은 신규 수급자는 858명으로, 이 중 중소기업 근로자가 75%(649명)를 차지했다. 민간 사업장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한 근로자 4명 중 3명이 중소기업 직원인 셈이다. 올해 2월 기준 육아휴직자의 절반가량(45.2%)이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근로자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나온 일가정양립 제도 중 중소기업에 단축 근무제를 확산할 여지가 가장 큰 셈이다. 단축근무 때 임금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포괄임금제 관행을 정부가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김효순 고용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의 급여 명세서를 확인할 때 구성항목의 시간비례 여부를 따지고 고정적으로 준 임금은 전액 삭감하지 않도록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 정책효과 반감 ‘포괄임금제’ 규제 추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통상임금(기본급)의 60%에서 80%로 확대’(이미 시행), ‘육아기 단축근로제 사용기간 확대, 육아휴직 미사용일수의 2배로’(관련 법 국회 계류 중)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올해 들어 시행됐거나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제도 개선안이다. 지원금이 확대되니 근로자 임금 손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기본급이 작고 시간외수당의 비율이 매우 큰 포괄임금제 사업장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시간외수당이 다 삭감된 상황에서 지원금은 기본급의 80%만 나오므로 임금 손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근로자에게는 육아기 단축일수가 2배로 늘어나더라도 별로 의미가 없다. 임금 불이익이 크다 보니 지금도 보장된 기간을 다 채우기 어렵다. 정부의 제도 개선이 일부 근로자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소·영세 사업장일수록 불리한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사례가 많아 정책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임금 관행을 방치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제도의 가짓수를 늘리거나 예산 동원 정책만을 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재인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담았다.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과 근로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포괄임금제 규제가 워낙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보니 아직 논의에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는 법원 판례를 근거로 존재하는 제도인데 과거 판례가 포괄임금제를 폭넓게 인정한 반면 최근에는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다면 포괄임금제가 적합하지 않다고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포괄임금제에 대한 지침이 마련되면 근로감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과 달리 공무원은 실질적인 혜택이 계속 늘고 있다. 현재 만 1세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은 근무시간을 1시간 줄이더라도 100% 임금을 보전받는다. 오는 5월이면 ‘만 5세 이하, 하루 2시간까지’로 혜택이 늘어난다.

이런 혜택을 민간사업장 근로자도 유사하게 누릴 수 있도록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1시간 단축근무 시 기본급 전액을 보전해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법을 개정해야 하고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을 해야 하는 만큼 재정당국과 협의가 필요해 아직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