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나를 강간했던 그놈이 요즘도 웃으며 인사" 외국인 女바둑기사, 김성룡 9단 상대 '미투'


바둑계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터져 나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투 가해자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해설하는 등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바둑 해설가 김성룡(42) 9단으로 한국기원 홍보이사, 바둑도장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급해진 한국기원은 윤리위원회를 구성, 진상조사와 함께 징계절차를 밟기로 했다.

18일 한국기원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여자 프로기사 A씨는 지난 17일 한국기원 프로기사 전용 게시판에 '과거 김성룡 9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요즘 '미투' 때문에 옛날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던 시간인데…. 역시 그럴 수 없다"며 지난 9년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을 꺼냈다.

A씨는 "2009년 6월 5일 김성룡 9단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같이 오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다가 술이 많이 마셨고, 그의 권유대로 그의 집에서 잠을 잤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을 차려보니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고 그놈이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가 나를 강간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눈을 뜬 것이다"라고 성폭행 사실을 적시했다. 

이어 "일주일 뒤 김성룡이 술에 취해서 내가 사는 오피스텔 앞으로 찾아와 만나자고 했다. 몇 호인지도 물어봤다. 다행히 그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문을 잠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고 몸서리쳤다. 

외국인 여성기사를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룡 9단.

A씨는 "외국인 여자기사로서 그동안 지내오면서 내가 얼마나 힘이 없는 존재인지 실감했다. (…) 9년간 혼자만의 고통을 감내하는 동안, 김성룡은 바둑계에 모든 일을 맡으며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방송, 감독, 기원 홍보이사 등등. 나는 9년 동안 그 사람을 피해 다녔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요즘도 웃으며 인사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 날의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무섭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이 글을 보고 내 마음이 어땠는지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 나의 아픈 얘기를 꺼내는 것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고, 누구도 나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라며 미투에 나선 이유를 알렸다.

미투이후 김성룡 9단은 외부와 연락을 끊은 상태이지만 일파만파로 파장이 번져나가고 있다.

한국기원은 임무영 대전고검검사를 위원장으로 한 윤리위원회를 통해 당사자들을 상대로 구체적 경위를 파악키로 했으며 2차 피해방지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