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겨울 어느 날, 이름 모를 곳을 거닐다 시들어 가는 한해살이 식물이 허공에 그려내는 실루엣에 매료되었다. 그 후 겨울이면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들고 이들을 찾아 다녔다. 빛을 등지고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 본 식물들은 고작 들판의 이름 모를 잡초일지언정 나름의 초록빛 르네상스를 지나 황폐하면서도 찬란한 사멸을 묘사하듯 그들의 마지막 제스처는 최고의 구성미를 자아냈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이 허공에 조각한 듯한 그들의 모습은, 바람이 나부낄 때는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이 극적인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시를 쓰고 스케치도 하고, 비디오작업도 했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탈출구가 돼준 것이 바로 자개 (mother of pearl: 진주의 어머니란 뜻을 내포)였다. 자개는 시시각각 변화하여 오묘한 하늘의 빛깔이 되어 식물들의 몸짓을 여백 아닌 여백으로 묘사하기에 더 없이 좋은 매개물이 되었다.

그의 화폭에서 한해살이 식물의 검은 실루엣은 검은 웨딩드레스 자락이 흔들리는 ‘생명의 서’ 같다. 죽음을 향해 말라가는 식물의 외형에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춤을 추는 것 같은 생의 역동성을 실감하게 된다. 배경이 된 자개가 홀로 자신의 빛을 발하며 대상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우주의 빛, 생명의 빛이다. 25일∼5월1일 삼청동 갤러리도스에서 문이원의 ‘검은 춤, 허공이 그린 몸짓’전이 열린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