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1일 전날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일련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발표한 조치였다. 김 위원장의 의도가 선한 것이라면, 기존의 ‘경제-핵 병진노선’ 대신 향후 일련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수교 및 북한의 안정보장, 경제발전 등을 일구겠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공식 발표 직후 트윗터 계정에 “북한이 모든 핵 실험을 중단하고, 주요 시험장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이는 북한과 세계에 좋은 뉴스이자 큰 진전이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한다”고 글을 올렸다. 예상은 아니더라도 기대는 했다는 듯한 즉각적인 반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시간 뒤에는 “김정은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북한은 핵 실험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할 것이다. 핵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입증하기 위해 북한 북쪽에 있는 핵 실험 장소를 폐쇄할 것이다”며 북한의 발표를 해설하는 트윗을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관련해 추가로 올린 트위터 |
김 위원장으로서도 소기의 성과를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낫다. 북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료시점과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일정이 맞물려 있어서다. 일단 신뢰지수를 높인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게 필요하다. 1개월쯤 뒤에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형식의 가시적 성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시진핑 중국 총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적절한 접촉 및 사후 승인 과정도 거쳐야 한다. 시진핑 총리나 푸틴 대통령도 주목을 받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 공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되면 남북한 당국이 주도해 일군 ‘코리안 시리즈’는 ‘월드 시리즈’로 어느새 격상하게 된다.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기대지수를 높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은 2차 게임이자 본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실상은 북한과 미국이 아직 개최지에 합의하지 못한 모양새이다. 세기적인 게임의 개최를 제안했던 한국도 북한과 미국의 결정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이다. 또 모른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양해가 돼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개연성은 낮아 보인다.
개최지를 두고는 그동안 남북한과 중국, 미국 등을 포함해 여러 곳이 두루 거론됐지만, 북한과 미국이 현재 추리고 있는 개최지는 한반도가 아닌 중립지대이다. 서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고, 상대에게 거부감을 주지않는 장소를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때 거론됐던 판문점을 비롯한 한반도 일원은 배제된 상태이다. 판문점은 남북한이 세계의 시선을 독점한 뒤라는 점 때문이지 미국이 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는 유럽의 중립국과 북한에서 가까운 동남아 지역이 집중 거론되고 있다. 언론의 잇따른 경쟁보도 속에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또 하나의 추정 보도를 더했다. WSJ는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장소로는 중립적인 지역이 거론되고 있다”며 “중국이나 일본 등은 최소한 선택지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을 인용해 “유럽의 제네바와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이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북·미정상회담 개최시간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방미특사단장으로서 자신을 면담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자 4월 중 개최를 희망했다. 그러다가 정 실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가 좋겠다’는 조언에 5월 이내 개최에 동의했다. 이후 6월 초까지 기한을 늘려잡았다. WSJ는 이날 북·미정상회담이 6월 8일∼9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에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