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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공화국 대한민국-하] '소송 만능주의' 사법부 부담 치솟아…재판의 질 저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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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 남발되면서 부작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종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상대방을 불리하게 만들려는 수단으로 고소·고발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소송 남발은 검찰이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없을 만큼 곤란한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 사실상 검찰이 '민사소송의 해결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매년 검찰에 접수되는 고소·고발은 50만건에 이른다. 2012년에는 40만4313건의 고소와 8만5371 건의 고발(총 48만9684건), 2013년에는 41만8395건의 고소와 9만4118건의 고발(총 51만2513건)이 있었다. 이어 2014년에는 40만9409건의 고소와 8만6027건의 고발(총 49만5436건)이 접수됐다.

2015년에는 43만3176건의 고소와 7만9503건의 고발(총 51만2679건)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41만3138건의 고소와 7만6323건의 고발(총 48만9461건)이 접수되는 등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법조계는 고소·고발이 늘어난 원인을 '민사사건의 형사화'에서 찾는다. 수사기관 고소·고발을 통해 분쟁 상대방에게 압박을 준다거나, 민사소송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수사기관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다 보니 이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소·고발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무고 사건도 많아지고 있다. 무고란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며 해당 기관에 고소·고발하는 것을 말한다.

검찰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무고 사건 접수는 4만7913건에 달한다. 무고 사건 중 실제 혐의가 입증돼 검찰의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약 20%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의 경우 1만156건의 무고 사건이 접수됐으나, 7026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불기소율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란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선 검사들은 무고 사건을 수사하는 데 적지않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두 당사자의 진술이 명백히 엇갈려 객관적인 증거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하게 범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소·고발 남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사 주체인 검찰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검찰청은 최근 고소인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고소장을 피고소인이 받아 볼 수 있게 하는 등 내용의 고소 사건 처리절차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개선안에 따르면 검찰은 향후 고소장이 접수될 경우 검사의 재량에 따라 고소인 동의 없이 고소장 접수 사실 및 고소장 사본을 피고소인에게 보낼 수 있게 된다. 피고소인이 고소 사실을 알고 사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는 소송 남발을 막겠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당사자 대 당사자로서 소명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함으로써 인권침해 소지와 수사력 낭비를 막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보다도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데 대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수사기관인 검찰의 짐을 덜기 위한 민간조사업 도입, 손해배상 책임 비율 향상 등이 거론된다.

특히 조정이나 중재 제도 활성화 필요성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양 당사자 간의 문제가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그 전에 원만하게 해결되면 사건을 둘러싼 모든 관계인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檢 무고 사건 수사 어려움 호소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소송 만능주의'로 인해 사법부 부담이 한계선으로 치닫고 있다. 매년 늘어나는 소송으로 결국 재판의 질이 저하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소송 증가에 따른 판사 1인당 재판량은 매년 증가 추세로, 2011년의 경우에는 전국 법원에 총 150만3696건의 소송이 접수돼 1인당 589건을 맡았다.

이어 2012년에는 총 157만3652건으로 소송이 증가했고, 1인당 사건 수도 593건으로 늘었다. 2013년엔 총 160만5623건의 소송이 접수돼 판사 1인당 599건의 사건을 맡았다. 2014년엔 접수된 소송이 165만7385건으로 늘었고, 판사 1인당 연간 609건의 사건을 맡게 됐다.

국내 법관들의 재판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매우 큰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연방법원 법관당 사건은 416건으로, 같은 해 한국 판사에 비해 100건 이상 낮았다. 독일은 2012년 기준 법관 1인당 맡은 사건이 210건에 불과했고, 일본은 같은해 판사 1인당 사건 수가 353건에 그쳐 우리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상급심에서도 소송 수는 증가하는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전체 상고사건 수는 2005년 2만2587건에서 2009년 3만2361건에 이르렀다. 2014년에는 3만7652건으로 증가했다. 2014년 기준 대법관 12명(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제외)이 각 3137건의 사건을 처리한 셈이 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나날이 증가하는 이유는 소송으로 분쟁을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소송이 많아져도 재판이 크게 지연되거나 비용이 과다하게 들어가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보니, 굳이 분쟁 해결을 위한 다른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

세계은행이 2017년 10월 발표한 '기업환경평가 보고서 2018'에 따르면, 한국에서 재판 접수부터 종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90일로 조사됐다. 일본(360일), 미국(420일), 독일(499일) 등보다 짧은 수치다.

상대적으로 비용도 저렴하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민사 소송 비용은 소가(소송 목적 가액)의 1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23.4%, 미국은 30.5%, 독일은 14.4%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소송 증가로 인한 피해는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건 수와 상관없이 소송을 같은 시간 안에 종결짓다 보니 사건 당사자가 충분히 의견을 낼 기회가 줄어, 결국 재판 만족도가 낮아지게 된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2013년도 기준 27%에 그쳤다. OECD 회원국 평균인 54%의 절반 수준이다.

◆소송 증가 피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민사소송 건수가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변호사 선임 비용 상승과 소송 남발을 막으려는 정부의 노력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민사소송 건수는 1995년 인구 1000명당 약 10건에서 2015년 2건으로 줄었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사소송이 급증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는 게 관행이 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미국의) 민사소송이 급감한 배경으로 몇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변호사 선임 비용이 매년 꾸준히 오른 게 1차 원인으로 지목했다. 소송에서 이기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이 웬만큼 크지 않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민사소송 남발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미국 정부가 각종 분야에서 소송 제기 요건을 까다롭게 한 것이 민사소송 건수 감소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소송 남발 사회적 비판 여론 높아져…'소송 천국' 美 민사소송 급감

우리나라가 '소송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씌워지기까지는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무고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는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보복 수단으로 고소, 고발이 악용될 수 있는 만큼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경우 고소·고발인에게 금전적 불이익을 받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소·고발인 조사에서 악성 민원인을 가려내고, 무고죄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 남소를 방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행법상 기소되고 무죄가 확정된 피고인은 법원에 형사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피고소, 피고발인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운영중인 법원과 수사기관의 조정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소송 남발 방지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경찰은 민사, 행정사건을 형사고소로 해결하려는 민원인들을 중재하고 법률 조언을 해주는 수사민원상담센터를 확대해 시행 중이다. 전국 각지의 지방법원에서도 불필요한 소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재판부 배당사건을 줄여 집중적인 심리가 가능하도록 2009년부터 조정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