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산·바다·들·강 오롯이 한 곳에… '차 시배지' 경남 하동

든든한 지리산 뒷배로 산줄기 따라 흘러내린 물줄기는 섬진강과 조우
강물에 섞인 흙 모이고 모여 평야 이뤄…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에 다다른다
동네 작은 식당에 들어가 백반 또는 정식을 주문한다. 김치와 계란말이 등 다양한 반찬이 상에 깔린다. 기본 찬 외에 한두 가지 그 지역의 특징을 반영한 반찬이 반긴다. 바닷가라면 생선, 산이라면 제철 나물, 곡창지대라면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이 밥상에 떡하니 올라온다. 다른 지역이라면 추가 주문을 해서 먹거나, 구할 수 없는 식재료가 기본 찬으로 제공된다. 이곳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반찬과 메뉴가 상에 놓인다. 나물은 기본이고, 생선 조림도 눈에 띈다. 거기에 더해 희멀건 빛깔의 재첩국이 흰쌀밥 옆에 놓인다. 산과 바다, 강과 들에서 나는 식재료가 한 상 가득 모여 있다.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상차림을 보니 입에 한 술 넣기 전부터 배가 불러온다.

경남 하동 금오산은 정상까지 차량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 큰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다도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사천대교와 창선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린 물줄기는 섬진강과 만난다. 강물에 섞인 흙이 쌓이고 쌓여 평야를 이룬다. 그렇게 흘러 강물은 바다에 다다른다. 무엇하나 자신이 더 잘났다 뽐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 경남 하동이다.

한 달 전 온 천지를 하얗게 물들였을 벚꽃길을 따라 하동에 들어선다. 지금은 녹음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줄기 끝부분에 자리 잡은 화개면에 이른다. 산 중턱마다 작달막한 차나무들이 한껏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차를 재배한 기록이 남아있는 ‘차 시배지’가 바로 이곳이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 씨앗을 지리산에 심은 것이 1200년간 이어온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작이다.


차 시배지를 중심으로 이어진 산줄기마다 차밭이 조성돼 있다. 잘 정비된 모습보다는 야생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차 나무가 잘 크려면 안개와 큰 일교차가 필수다. 화개면 일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에 안겨 있어 차 재배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어떤 차밭을 올라도 막는 이는 없지만, 산 중턱에 있는 차밭 풍광을 내려다보려면 가파른 길을 오를 생각은 해야한다. 정금차밭이 그나마 지자체에서 관리해 길이 닦여 있다. 꼭 차밭 풍경이 아니어도, 한적한 산골마을 풍광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기에 차 한잔을 곁들이면 ‘힐링’이 따로 없을 듯싶다. 주위에 차를 즐길 수 있는 찻집들이 많으니 여유를 즐기기 제격이다.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야생차문화축제에서도 다양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섭씨 200도로 달군 무쇠솥에서 차 생잎을 볶아 수분을 날려 만드는 덖음차.


산골마을을 나와 악양면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동학운동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다룬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모습을 재현해놨다. 서희가 거하던 별당부터 무당의 딸 공월선, 투기심이 강한 강청댁, 재물에 집착하는 임이네 등 극중 인물이 살던 초가가 그대로 서있다. 실제 박경리 선생이 소설에서 모델로 한 집은 최참판댁 아래에 있는 조씨 고택이다. 경상도에서 드넓은 토지를 찾기가 힘들었던 박경리 선생은 딸과 여행하며 섬진강과 너른 들판이 있는 평사리를 만나게 됐고, 이곳을 무대로 소설을 썼다. 이후 소설을 바탕으로 지금의 최참판댁이 지어졌다.
섬진강에서는 아침나절에 재첩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재첩은 이맘때부터 살이 올라 맛이 가장 좋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하동의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최참판댁 앞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대표적인데, 한산사 전망대 역시 뒤지지 않는다. 섬진강이 곧게 흐르는 모습을 보려면 한산사 전망대가 더 낫다. 어느 쪽에서 보든 들판 가운데 서 있는 부부송이라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부부송을 가까이서 보려면 작은 호수 동정호로 가면 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을 보고 고향 땅에 있는 호수와 닮았다며 ‘동정호’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정호에선 부부송 옆에서 앙증맞게 자라고 있는 자녀 소나무 두 그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섬진강 하구에서 하동 화개까지 물길을 ‘하동 포구 팔십리’라고 하는데, 송림이 조성된 곳의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림이 있다. 섬진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 화개까지 물길을 ‘하동 포구 팔십리’라고 하는데, 송림이 조성된 곳의 경치가 이 팔십리 물길 풍경의 절정을 찍는다. 아침나절에 이 부근을 거닐면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대강 사업에서 제외돼 강이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재첩은 이맘때부터 살이 올라 맛이 가장 좋다.
경남 하동 금오산은 정상까지 차량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 큰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다도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사천대교와 창선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하동의 전부로 생각하기 쉬운데, 바다를 접한 지역이다. 특히 하동 남쪽 금오산에 오르면 다도해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금오산은 정상까지 차량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큰 힘 들이지 않고 편하게 다도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사천대교와 창선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국의 바다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와 견주어도 경치가 뒤지지 않는다.

하동=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