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기 성남시에 사는 고교 1학년 박모(16)군은 “학교 수업시간에는 그냥 자거나 자습을 하는 게 더 낫다”며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잠든 교실’로 대표되는 일반고의 위기 상황이 심상치 않다. 학습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학생들 사이에선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패배감마저 엿보인다. 일반고가 살아나지 않으면 공교육 전반이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반고 학생 57%, 교사 87%가 “위기”
9일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전국 2360개 고교 중 일반고는 1556곳으로 65.9%를 차지한다. 전체 고교의 각각 6.6%인 특목고, 6.7%인 자율고(공립·사립 모두 포함)에 비해 월등히 비중이 높다. 학생 수로 따져도 일반고 학생이 전체 고교생의 71.5%로 특목고(4.1%)와 자율고(8.0%)를 크게 웃돈다.
일반고가 겪는 위기의 원인으로는 △학생 자치활동, 동아리 활동이 형식적이다(63.4%) △중학교 성적이 낮은 학생이 많이 진학했다(52.1%)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 낮다(52.2%) 등이 꼽혔다. 특히 1학년은 50%, 2학년은 54.5%가 ‘수업 의욕이 낮다’고 답해 학년이 높아질수록 의욕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상위권 학생 특목·자사고 쏠림이 원인
일반고 위기의 원인으로 특목·자사고의 등장과 그로 인한 ‘고교 서열화’가 우선 꼽힌다. 중학교 성적이 우수하거나 학업 열의가 높은 학생들이 특목·자사고로 몰리면서 일반고는 학습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서울지역 일반고 204개교와 자사고 23개교 신입생들의 중학교 내신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보면 자사고 신입생 38.6%가 상위 20% 이내였다. 반면 일반고는 그 비중이 18.5%로 자사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서울 자사고들은 2015학년도부터 중학교 내신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선발 방식을 바꿨지만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이 여전히 자사고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학습 분위기를 이끄는 학생이 한 반에 대여섯명은 있어야 하는데 공부 잘하는 애들이 특목·자사고로 빠져나가면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교사들도 열의가 많이 떨어졌는데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사들이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당국은 몇 해 전부터 일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부의 ‘고교 교육력 제고 사업’과 서울시교육청의 ‘일반고 전성시대’가 대표적이다. 이들 사업은 일선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고 교사 연수와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효과를 놓고선 이견이 분분하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일반고에 예산을 꾸준히 지원해온 데 비해 효과를 거뒀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반고 전성시대 사업 만족도는 2016년 학생 만족도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며 “올해는 교육과정 다양화에 중점을 두고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일반고 학생들은 졸업 후 대학교 진학 외에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사들의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 교육과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련 한국외대 교수(교육학)는 “현상적인 원인은 고교 서열화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교육이 시장화된 탓이 크다”며 “학생을 교육의 소비자로만 보면 수업 시간에 자는 것도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특목·자사고로 성적 상위권 학생이 몰리면서 일반고의 학생 층위가 바뀌었는데, 교육적으로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며 “현상에 대한 처치 외에도 시장화된 교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 등 다양한 차원의 노력을 함께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