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라는 인물은 대학병원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 상사의 ‘비리’ 지시를 그대로 이행한 탓에 해고당한다. 상사는 그에게 조용히 지방에 내려가 있으면 곧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언질을 준다. 그는 조선업으로 흥했던 지방도시로 내려가 그곳 병원의 관리부 구매담당으로 채용된다. 이곳에서 그는 이석이라는 인물의 비리를 알게 되고, 이번에는 “잘못된 것을 적시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자신만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안도감”마저 느끼면서 아내의 배 속에 깃든 아이를 위해서라도 당당히 정의를 실현하려고 내부 고발을 하기에 이른다.
이번 편혜영의 ‘전락의 서사’는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를 쓸수록 실패하는 이들의 아픔’을 직시해온 그녀는 “앞으로는 자신의 인물들이 조금씩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판단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거니와, 과연 이번 장편의 마지막은 그녀의 말대로 일말의 희망을 예고하며 맺는다. ‘무주’는 아내 배 속의 아이에게 간절히 희망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말미에 이번에는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모두 털어놓을 작정임을 밝히면서 그 후과를 감당할 태도 또한 분명히 다를 것임을 예고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표제는 마태복음 8장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에서 따왔다. 작중인물 이석은 예수의 이 말을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무주가 환멸을 딛고 다시 비리를 드러낼 결심을 하는 것은 산 자로서, 살아 있는 자들을 살리기 위한 분투일 터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