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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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2014년에 멈춘 ‘통일금융’ 논의

“한국의 통일이 기대된다. 우리의 선례를 보고 이렇게 미리 배우며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6년 전 본지 연중기획 ‘통일이 미래다’ 취재차 기자가 독일을 찾았을 때 구동독 지방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다. 당시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호이어스베르다 등 여러 도시에서 통일 이후 경제발전을 이뤄내거나 반대로 일자리가 사라져 소멸하고 있는 극적인 변화의 과정을 확인했다. 독일인들은 한국의 통일 준비 과정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년 뒤인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운을 뗀 뒤 바로 그 드레스덴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대북 원칙을 선언했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한 열기에 휩싸인 기간도 잠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다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뤄지면서 금융권에서도 남북 경제협력 재개 대비를 시작하고 있다. 북한의 인프라 사업이 활성화될 경우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정책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북한 관련 연구는 ‘통일 대박론’이 지배하던 2014년에 멈춰 있는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2014년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라는 23쪽짜리 자료가 외부에 내놓은 성과물의 전부다. 박근혜정부에서 이뤄진 이른바 ‘통일금융’ 논의다. 경제통합 시 금융정책과제, 안정적 경제통합을 위한 금융시스템 구축방안 등 주제는 선명하지만 내용은 개론 수준이다. 자료에서도 한계를 인식한 듯 “통일에 대비해 국내 학계·정책금융기관·금융권의 생산적인 통일 논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현시점에서 정부 전체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며 향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달았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
금융권의 분위기 조성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금융회사들은 ‘통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예적금과 펀드 상품을 앞다퉈 출시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통일금융 시계가 2014년에 멈춘 것은 얼마나 걸릴지 가늠조차 힘든 장기과제를 이벤트처럼 성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시작하는 것도 뜬금없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중단해서도 안 될 과제다. 북한의 금융제도와 정책을 분석, 평가할 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기업 경제연구소나 은행 부설 연구소 등의 민간 연구기관에서 북한 경제와 금융 연구자료를 내놓으며 명맥이나마 유지해온 것을 보면 전혀 못할 일도 아니다.

독일 통일의 부정적 경제 효과를 분석해 반향을 일으켰던 ‘대재앙 통일’(2005년)의 저자 우베 뮐러는 저서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경제적 지원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해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동독 재건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 원인으로 “통일 시점에 서독 정부가 동독 경제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점을 꼽았다.

막연한 통일금융 논의에서 한단계 나아가 앞으로 변화될 북한의 경제체제와 우리 금융의 역할에 대해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