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00쪽이 넘는 관보를 뒤적거리면서 재산공개를 살펴야 했다. 남들이 숨겨놓은 것을 살피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라지만 매년 끔찍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숫자만 보다 보니 관보를 살펴본 뒤 자다가 숫자들이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검산 과정에 들어가면 지끈거리는 머리는 혼수상태로 바뀐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
국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인정보”가 이유다. 수차례 질문했지만, 그때마다 “개인정보 위·변조가 가능해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인정보가 위·변조되어서 돌아다닐 위험성을 감수할 수 없다는 논리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요새 시대에 국회의원 재산 위·변조 가능성을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일 테다.
그렇지만, 애초에 재산공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국회의 대응은 문제를 피해가려고만 하는 소극적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직자들의 직위를 이용해 사적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않도록 한 것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취지다. 현재와 같이 ‘보기 어려운’ 재산공개 방식은 이러한 취지를 상당 부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위·변조 가능성을 우려하거나 개인정보 침해가 문제된다면, 우려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가린 채 공개해도 된다. 어차피 숫자계산과 스프레드시트 함수는 개인정보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다스(DAS) 소유주를 둘러싼 논란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재산공개를 전격 실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 중 하나인 진경준 게이트는 진경준 당시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사서 큰 이익을 본 것이 재산공개를 통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국회가 내놓은 ‘753쪽’ 속에서도 또 다른 의혹에 찬 다스가, 이득을 본 비상장 주식이 있을지 모른다. 이를 밝혀내려면 숫자에 밝은 일부 기자들의 ‘취재열정’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