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 공장을 차려놓고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때문에 시장 진출에 발목이 잡혔던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가 조만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산업정책 수장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14일 업계·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먀오웨이 중국 공업화신식화부(공신부) 부장(장관)이 다음주 중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신부는 산업·에너지·정보기술(IT)·중소기업 정책 등을 담당하는 중앙부처다. 먀오웨이 부장은 방한 기간 백운규 산업부 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방한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 맞춰 구체적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부가 꾸준히 국내 배터리 업체에 대한 차별 문제를 중국 측에 제기해온 만큼 이 자리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겠냐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은 2016년 말부터 한국 업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LG화학, 삼성SDI가 각각 난징, 시안에 세운 배터리 공장의 가동률이 한때 10%까지 떨어질 정도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이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중국 완성차 업계의 자발적 판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사드 보복 조치가 발동하고 있다는 게 한국 정부·업계의 판단이다.
이처럼 1년 넘게 배터리 시장에 진입 장벽을 높게 치던 중국의 분위기는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일단 최근 한국 단체관광 재개 등 한·중 관광업계에 온기가 돌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최근까지 2018년 보조금 지급 업체 목록(화이트리스트) 신청을 받아 여기에 한국 업체가 등록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업체의 배터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국 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의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 점유율은 각각 12.4%, 6.6%였다. 이는 전 세계 업체 중 3,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미 보조금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완성차 업체의 국내 배터리 업체에 대한 수요 문의는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월 고효율 배터리 차종에 유리하도록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정하면서 국내 업체의 배터리 기술력이 중국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필요한 상황이 됐다. 더욱이 중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2019년 말이면 완전 종료될 예정이라 보통 2∼3년 걸리는 신차 개발에 들어가는 완성체 업체가 한국 배터리 장착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잠재 수요가 풍부하기에, 중국의 배터리 금한령이 해제되면 국내 업체 판매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전기차(PHEV·BEV) 판매량은 총 86만4000대였다. 이는 전 세계 판매량의 59.8%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국 배터리 업체 규제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단순히 사드 보복 조치의 일환이 아니라 자국 업체의 배터리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자국 시장에 장벽을 세워서 5년 정도 앞서는 한국, 일본 등 선두 국가 기술력을 따라잡으려는 것”이라며 “보조금 제도 자체가 종료될 때까지 현 상황을 유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