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석(오른쪽)과 박경순씨가 11일 청주 IPC 세계사격선수권 폐회식에서 금메달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대회 조직위 제공 |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는 것만큼 애달픈 부부의 정(情)이 또 있을까. 지난 11일 막을 내린 2018 청주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세계사격선수권에는 ‘보름달 부부’가 환하게 떴다. 척수장애라 상체 힘이 부족한 남편의 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 햇수로 13년째 호흡을 맞춰 왔지만 좀처럼 질리지가 않는 건 이미 한 몸과 다름없는 사이이기 때문. 이들은 한국 장애인 사격의 ‘간판’ 이지석(44·광주광역시청)과 그의 아내 박경순(41)씨 부부다.
아내의 살뜰한 내조를 바로 옆에서 받은 덕분일까. 이지석은 이 대회 2관왕(입사 개인·단체전 10m)을 거머쥐며 자신의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을 올렸다. 2020 도쿄패럴림픽 출전권 확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회라 기쁨이 두 배다. 이지석은 도쿄에서 2008 베이징패럴림픽 2관왕에 올랐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세계선수권과 유독 인연이 없었는데 이번엔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며 소감을 밝혔다.
아내와의 동행은 ‘운명’이었다.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던 이지석은 군 복무 뒤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다 2001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다리를 잃고 재활병원에서 2년 동안 머물렀지만 당장 살길이 막막했다. 퇴원을 준비하는 그에게 당시 간호사이던 박씨가 눈에 밟혔다. 편견 없이 환자들을 성심으로 돌보던 박씨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수차례 거절에도 이지석은 구애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진심이 통했다. 이지석이 2006년에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고 지금껏 힘든 길을 같이 걷고 있다.
사실 이지석은 2012 런던패럴림픽 직후 잠시 운동을 접었다. 2008년 어렵사리 인공수정에 성공한 박씨가 아들 이예준(11)군을 낳게 되면서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로는 육아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격을 잊지 못해 시합장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는 일이 잦았다. 그런 그를 짠한 눈빛으로 보던 아내 박씨가 “우리, 하고 싶은 것 포기하지 말고 살자”고 했다. 결국 아내와 함께 사격장으로 돌아온 이지석은 왕년의 실력을 금세 되찾았다.
이지석은 “아내가 바빠 다른 보조자와 같이 경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예선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성적이 안 나오더라. 곁에 아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선수생활 황혼기인 그는 은퇴 후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물론 그때도 이지석의 곁에는 반달 웃음을 꼭 빼닮은 아내가 있을 테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