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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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트럼프, 노벨 평화상 김칫국 너무 빨리 마셨나

북한이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 협박을 가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머쓱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핵 빅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를 보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노벨 평화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언급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김칫국을 너무 빨리 마신 것 아니냐는 얘기가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북한의 협박에 대한 입장을 캐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극구 함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애용하던 트위터에도 글을 남기지 않았다.

◆북한의 협박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 부상은 16일 발표한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경고했다. 김 제1 부상은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제1 부상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선 핵 포기 후 보상’ ‘리비아식 핵 포기’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폐기’ 등을 요구한 데 대해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응수했다.

김 부상은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상은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사진=AFP·연합뉴스
◆김정은과 트럼프

미국 CNN의 칼럼니스트인 프리다 기티스는 이날 북한의 위협이 놀랄 일이 아니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티스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향해 가던 ‘평화의 열차’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기티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천연덕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는 협상가로서 가장 기본적인 실수 중 하나를 이미 저질렀다”면서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회담 성과를 통해 큰 정치적인 승리를 얻고자 하고,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욕심까지 밝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티스 칼럼니스트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티스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계획대로 열리도록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기티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양보한 것을 조롱했지만, 그에게도 아직 궁극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고 있고, 세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머쓱해진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느닷없는 협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북한이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 3명을 석방하자 승리감에 도취했던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면서 “훌륭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훌륭하다’(very honorable)거나 ‘진짜 뛰어나다’(really excellent)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미국 NBC 방송은 이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선전전에서 이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NBC 방송의 외교 전문 기자인 안드리아 미첼은 “이번 일은 정말로 예상 가능했다”면서 “트럼프는 상대가 조건을 내놓기도 전에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미첼 기자는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마치 북한과 협상이 끝난 것처럼 행동했고, 그런 성공을 자랑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