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겠다는 페이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인의 감정을 남이 대신 드러낸다는 게 어색할 법도 하지만,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툴거나 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가 감정 표현도 ‘외주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페이스북에는 ‘대신 화내주는 페이지’나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외에도 ‘대신 가오(‘폼’의 일본어식 표현) 잡는 페이지’, ‘대신 뻔뻔한 페이지’, ‘대신 힘들어해주는 페이지’ 등 유사한 페이지들이 우후죽순처럼 개설돼 있다. 이 중 몇몇 페이지는 팔로워가 수만명이 넘는다. 페이지 이름이 똑같은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 페이지는 관리자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는 쪽지를 보내면 그에 맞는 게시글을 올려주거나 관리자가 직접 글을 올리는 식으로 운영된다. 가령 페이스북 ‘대신 찌질한 페이지’에는 “점심 메뉴 통일 좀 하지 마세요. 나는 다른 거 먹고 싶단 말야…” 등의 글이 올라온다.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페이스북 ‘대신 화내주는 페이지’ 운영자는 “제보(쪽지)가 많이 오긴 하지만 그보다는 (제보 내용 말고 내가) 직접 쓰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된 일을 많이 해서 대충 어떻게 쓰면 반응이 좋을지 감이 온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감정의 외주화’를 두고 일종의 장난이라는 시각과 젊은 세대가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 교차한다. 대학생 유모(21)씨는 “감정을 대신 표현해준다는 데 의미를 둔다기보다는 그냥 재미로 들어가본다”며 “일부 게시글은 욕설이 지나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감정 표출은 주위에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나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2030 세대에겐 그럴 만한 사람이나 네트워크를 관리할 만한 여유가 별로 없다”며 “그러다보니 남이 대신해서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공유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SNS를 찾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회 초년생과 학생이 많은 2030 세대의 특성상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젊은 세대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화를 내는 등 감정을 표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며 “이 때문에 SNS 페이지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곽 교수는 이어 “예전처럼 형제자매가 많지 않은 점도 젊은 세대가 감정 표현에 서툴러진 한 원인”이라며 “형제자매가 많으면 그 사이에서 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히며 감정을 드러내는 법도 배우는데, 지금 2030 세대는 표현이 서툰 것은 물론 감정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