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공장 생산직으로 일한다. 그것도 야간 근무를 한다. 밤에 일하고, 낮에 아이를 돌본다는 생각은 애초 불가능했다. 잠을 줄여서라도 아이를 돌보려 했으나 무거운 눈꺼풀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몸이 고달프다 보니 스스로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괜스레 화풀이를 했다. 아동학대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여느 부모 못지않게 아이를 사랑한다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매일 아이가 방치되다시피 한 것을 보다 못한 이웃이 지난해 말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만 앞섰을 뿐 감정에 휘말려 잘못 대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양육법 등 많은 걸 배운 덕분에 건강한 엄마가 되는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A씨에게 아이를 학대할 의도는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관계 단절, 양육 지식 부족 등이 부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어린시절 학대를 당한 아동은 성인이 되어 자식에게 학대를 대물림한다는 통설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아동학대자가 배우자나 부모로 학대를 확대할 개연성도 크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장 사망 등으로 위기에 몰린 가정을 선제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높다는 뜻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보다 더욱 시급한 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29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자들은 몇가지 특징을 보인다. 2016년 아동학대 건을 분석해 봤더니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35.6%·중복)’의 특징이 가장 많았다. 전체 아동학대 사례 1만8700건의 90%가량인 1만6737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어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17.8%), 부부 및 가족 갈등(10.4%), 성격 및 기질 문제(6.1%), 중독(5.8%), 폭력성(4.8%) 등의 양상이 나타났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아동학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뜻이다. 미리 도와주고 알려줬더라면 그러한 사례가 훨씬 줄지 않았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현실에선 아동학대를 일찍 발견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몇년 새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잇달았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지금도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다. 사전예방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일이 터진 뒤 정부가 나서봤자 이미 늦었다.
지난해 많은 국민이 안타까워한 ‘준희양 사건’이 그렇다. 준희양은 친부와 그의 동거녀 학대 등으로 숨졌다. 친모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고 외조모·친부 집으로 옮겨다닌 끝에 변을 당했다. 사건 발생 1년 전 친모가 홀로 3남매를 키우던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 지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후 대응 위주 아동학대 체계 탈피해야
이렇듯 아동학대는 개인적 사정과 사회적 환경이 다양하게 얽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당장 근절하기도 쉽지 않고, 특히 피해 아동의 경우 정신적 충격이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힐 수 있다. 아동학대가 한번 시작되면 상습적으로 되고, 피해 아동이 자라서 가해자가 될 위험성이 커지는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기에 학대·폭력 등 부정적 경험을 한 아동이 성인이 돼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는 41.6%였다. 배우자를 폭행 및 학대하는 경우는 21.8%, 친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11.6%에 달했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동학대 예방을 제대로 하려면) 신고된 사건 중심으로 아동학대 책임소재를 가리고 아동의 안전에 중심을 두는 조사 중심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아동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을 해소하고 가족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가족 사정 중심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부연구위원은 또 “빈곤취약가정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은 학대의 중복적 발생을 예방하고 학대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와 노인학대, 부부폭력 등 인구 대상에 따라 제각각 작동하는 현행 학대피해자 보호체계 역시 개편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건강한 가정과 지역사회를 육성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좋은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아동학대 예방에 필수적이다.
이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에서의 재학대를 예방하려고 지난해 실시한 ‘홈케어플래너 서포터즈’ 사업에서도 확인된다. 이 사업은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중 30곳에서 관리자와 가정방문상담사를 채용한 뒤 해당 가정에 심리검사와 전문상담 연계서비스, 일상생활, 부모교육 등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난해 아동학대 재학대율이 8.3%(1만7584명 중 1460명)였던 데 비해 지원을 받은 가정의 재학대율은 2.3%(2703명 중 63명)로 훨씬 낮았다. 단지 상담과 교육 위주의 지원만으로도 재학대의 고리를 끊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해 사업의 긍정적 성과를 토대로 올해에는 대상을 3600명으로 확대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아동학대 대물림을 끊고 재학대를 방지하려면 가족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아동학대 고위험 가정을 위한 서비스가 다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