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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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끊이지 않는 데이트 폭력…'안전한 이별'은 없을까

지난해 피의자 수 1만명 넘어서 / 폭행·상해 최다… 감금·살인 등 順 / 한 달 평균 8명꼴로 목숨 잃어 / 인터넷선 ‘안전이별’ 관련글 인기 / 전문가 “경미한 처벌수위 높여야”
#1 지난 25일 오후 11시10분쯤 서울 양천구의 한 편의점. 흉기를 든 A(47)씨가 B(여)씨에게 달려들었다. A씨는 B씨의 신체 여러 곳을 흉기로 찔렀고, 자신을 제지하려는 편의점 주인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주변 시민들에게 제압당해 경찰에 넘겨진 A씨는 2년간 교제한 B씨로부터 최근 결별을 통보받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2 전날에는 C(48)씨가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 계단에서 D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D씨는 남편 등 가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경찰 조사에서 D씨와 연인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헤어진 연인을 대상으로 한 ‘이별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별범죄 사건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가 남성, 피해자가 여성인 탓에 불안에 떠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별범죄를 비롯한 ‘데이트폭력’이 잇따르자 정부가 지난 2월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피의자는 2014년 6675명에서 2015년 7692명, 2016년 8367명에 이어 지난해 1만303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매년 1000명 이상 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1만명을 넘겼다.

지난해 입건된 데이트폭력 사건 유형은 폭행·상해가 75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체포·감금·협박이 1189건, 살인·살인미수가 67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467명이 데이트폭력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평균 8명꼴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특히 이별범죄인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2016년 남편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살인 및 살인미수를 분석한 결과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한·만남을 거부해서’인 경우는 13건, 같은 이유로 인한 살인미수는 50건으로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다.

데이트폭력 피해가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 2월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은 경찰 신고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재발이 우려될 경우 접근 및 통신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종합대책 발표 이후에도 심각한 수준의 데이트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직장인 최모(31)씨는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뉴스에서 이별범죄 같은 데이트폭력 사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사실 당국이 데이트폭력을 막을 뾰족한 방법은 없다. 한동안 사귀었다고 해서 인격체인 상대방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근절이 어렵다.

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안전이별은 이별 과정에서 스토킹, 감금·구타·협박 같은 폭력 없이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지킨 채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안전하게 헤어지는 방법’ 등의 게시글들도 인기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이나 이별범죄에 대해 그나마 처벌이라도 엄히 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안전한 이별’이란 건 없다”며 “이별의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피해자를 보호할 만한 법률적 보호장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데이트폭력이 보통 단순 폭행으로 분류돼 처벌 수위가 경미하다”며 “피해자의 안전을 고려해 물리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협박까지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