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테오필 가우스 선교박물관장은 조선후기 보군(步軍) 갑옷을 기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소장하고 있던 갑옷을 지난 1월 한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했고, 이날 두 기관이 함께 갑옷을 언론에 공개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비슷한 감회를 과거에도 밝힌 적이 있다. 2005년 10월, ‘겸재 정선화첩’을 영구 대여 형식으로 반환하며 발표한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의 담화문에서다.
“반환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으며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주려면 기꺼이 줘야 합니다. 저는 화첩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테오필 가우스 선교박물관장이 지난 30일 언론에 공개된 조선후기 갑옷의 기증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물은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갑옷의 반환은 “한국과 독일 사이 문화적 교류와 우정의 증표”라고 말했다. 뉴시스 |
오틸리엔 수도원은 20세기 초에 선교를 시작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11년과 1925년 한국에 다녀간 노르베르트 베버 당시 총아빠스의 수집품을 중심으로 복식, 공예, 도자기, 지도, 서적 등 1700여점에 달하는 한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선교박물관은 개?보수 후 2015년 재개관을 하며 한국실을 따로 마련해 유물을 전시 중이다.
많은 유물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한국의 여러 기관과 조사, 복원, 전시 등의 협력을 할 때가 적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반환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번에 반환된 갑옷이 그랬다. 지난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이 갑옷을 살펴보던 중에 자연스럽게 반환이 거론됐다. 가우스 관장은 “많이 훼손돼 우리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렇다면 (유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복원 기술을 가진) 한국에 반환해 복원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갑옷을 소장하게 된 국립고궁박물관은 금속 장식의 녹을 제거하고, 갑옷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등의 보존처리를 3년에 걸쳐 진행할 계획이다.
갑옷의 경우처럼 유물의 보존처리나 과학적인 연구·분석 등은 오틸리엔 수도원의 고민거리다. 선교박물관 개?보수로 보관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한국 유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이다. 한국 유물을 소장한 미국이나 유럽의 대표급 박물관도 비슷한 사정이고 보면 선교박물관의 고민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가우스 관장은 한국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기대를 표시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바랐다. 특히 오틸리엔 수도원이 갖고 있는 아카이브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량의 각종 문서와 편지, 그림 등을 모아둔 것인데 선교 활동 초기 북한 지역에서 모은 자료들도 많다고 한다. 오틸리엔 수도원의 선교활동을 보여주는 자체 역사 자료로서의 의미도 크다.
어떤 경로로 유출되었든 유물의 반환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큰 돈을 들이거나, 수 년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을 하거나 혹은 법적 분쟁까지 하며 갈등을 벌인 후에도 반환은 삐거덕대기 일쑤다. 조건 없이, 흔쾌히 100여년간 소장한 유물을 내어준 오틸리엔 수도원의 유물 반환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우리가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나 가우스 관장은 한국에 유물을 돌려주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제 갑옷은 여러 분의 아름다운 나라로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게 자랑스럽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독일 두 나라 사이에 이어진 문화적 교류와 협력, 우정의 증표입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