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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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프랑스 말벡 VS 아르헨티나 말멕 당신은 선택은?

1503년 설립된 ‘까오르 보석’ 샤토 라그레제트
필터링 안한 까오르 말벡으로 오리지널 말벡 재현
샤토 라그레제트(Chateau Lagrzette)

10여년의 세월 탓일까.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수염도 덥수룩하다. 하지만 오랫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서 질풍노도의 청년시절에는 볼 수 없던 ‘향수’가 묻어난다. 세상을 떠돌며 온몸으로 체득한 깊고 그윽한 삶이 조화롭게 버무려진 성숙한 내음. 여유있게 미소짓는 얼굴에 가득 묻어있다. 말벡의 고향 프랑스 까오르(Cahors)에서 빚는 샤토 라그레제트(Chateau Lagrzette) 2007. 세상을 자양분 삼은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한 향기를 뿜어내는 ‘맏형’을 꼭 닮았습니다. 
샤토 라그레제트 와이너리와 포도밭 풍경. 출처=홈페이지
와인은 병에 담을때 정제와 안정화 과정을 거칩니다. 찌꺼기 등 불순물들을 제거해야 맑고 깨끗한 와인을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중에 유통과정에서 와인을 상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미립자들도 제거해야합니다. 계란 흰자나 벤토나이트 화산재로 미립자를 응고시키거나 아주 미세한 막으로 여과해 미생물까지 다 걸러내죠. 또 주석산을 미리 얼려서 빼버리고, 또 이산화황(So2)를 넣어 와인을 부패시킬 수 있는 미생물을 제거하거나 질소를 넣어 산소를 빼내는 산소안정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와인은 깨끗하고 상하지도 않겠지만 큰 단점을 하나 얻게됩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멋지게 늙어가는 사람처럼 와인도 병속에서 천천히 발전되며 다양한 풍미를 얻게 되는데 이런 여지가 전혀 남지 않게되는 겁니다. 이때문에 일부 생산자들은 필터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가끔 와인 병 레이블에 언필터드(Unfiltered)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는데 필터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샤토 라그레제트 2007
샤토 라그레제트 2007은 바다내음이 섞인 간장, 발사믹 식초처럼 오래시간 묶은 향들이 느껴집니다. 블랙체리, 검은 자두 등 검은 과일과 쵸콜릿, 감초 등이 어우러지며 탄닌은 우아하고 탄닌, 산도, 알코올 등의 균형감이 뛰어납니다. 이미 10년이 넘었지만 앞으로도 최소한 5년은 더 발전해 나갈 겁니다. 이런 힘은 바로 이 와인이 필터링을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겁니다.

샤토 라그레제트가 이런 양조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와이너리의 오랜 역사와 깊은 관련있습니다. 프랑스 말벡을 대표하는 산지는 남부에 롯(Lot)강을 끼고 있는 까오르(Cahors)인데 이 곳에서 가장 오래된 말벡 생산자가 ‘까오르의 보석’으로 불리는 샤또 라그레제트입니다. 역사는 1503년으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까오르의 중심에 있는 라그레제트 성에서 이때부터 말벡 와인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샤토 라그레제트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대표 품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말벡은 사실 한때 프랑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귀한 품종이랍이다. 특히 카오르 말벡 와인은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Francios) 1세를 포함한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던 품종이 말벡이었지만 이를 시기한 보르도 지역 와이너리들의 견제와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들, 그리고 포도 뿌리를 병들게 하는 필록세라가 유럽을 덮치면서 프랑스에서 말벡은 거의 멸종되다 시피합니다. 더구나 말벡은 메를로 보다 늦게 익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말벡을 다 뽑아버리고 메를로를 심기 시작합니다. 유럽의 기후는 들쭉날쭉해서 늦수확은 큰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수확기에 비가 내리거나 서리, 우박 등의 피해를 당하면 한해 농사를 다 망쳐버리게 됩니다. 이런 이유들때문에 말벡이 프랑스에서 잊혀져 가면서 라그레제트 성도 폐허로 방치되고 맙니다.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que Perrin)
샤토 라그레제트는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CEO를 지낸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que Perrin) 까르띠에 현대 미술재단 대표의 손을 거치면서 부활합니다. 그는 1980년 까오르 말벡의 역사와 매력에 반해 샤또 라그레제트를 사들인 뒤 25년에 걸쳐 샤토 건물과 정원의 복원 사업을 진행해 성을 과거의 장엄한 모습으로 되살립니다. 또 유럽 최고의 와인 컨설턴트로 유명한 미쉘 롤랑(Michel Rolland)이 합류해 화려했던 시절의 까오르 말벡을 다시 빚어냅니다. ‘원조 말벡’이 환생한 셈이죠. 이 와이너리에는 와이파이도 없어서 ‘디지털 디톡스’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개의 침실은 각각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꾸며졌을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프랑스 말벡과 아르헨티나 말벡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산지 멘도자의 말벡은 자두, 건포도 등 과일향이 많이 나고 커피, 초콜릿, 바닐라, 바이올렛 꽃향이 매력적입니다. 타닌이 강하지만 입안에서의 질감은 둥그런 느낌의 풀바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프랑스 까오르에서는 보통 말벡 최소 70%에 메를로, 따나 블렌딩하는데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 향과 오크향, 흙 냄새가 많이 나고 강한 타닌감이 느껴지고 ‘블랙 와인’이라 부를정도로 색이 매우 짙습니다. 이때문에 과거 까오르 말벡은 검기만 하고 탄닌만 잔뜩 낀 고급스럽지 못한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샤토 라그레제트 끌로드 부다마니(Claude Boudamani) 총괄이사

이에 샤토 라그레제틀를 인수한 페랑은 롤랑에게 우아하고 신선하며 미네랄리티 살아있는 와인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롤랑은 섭씨 8도의 저온침용을 통해 탄닌은 적게 우려내면서 예쁜 퍼플 컬러와 풍성한 향을 지닌 섬세한 말벡이 탄생했습니다. 샤토 라그레제트는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끌로드 부다마니(Claude Boudamani) 샤토 라그레제트 총괄이사는 “괴물에 가까울 수 있는 말벡을 섬세하게 잘 다듬은 곳이 5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샤토 라그레제트다. 아르헨티나가 말벡으로 유명하지만 까오르 말벡은 이처럼 우아함을 앞세워 오히려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등 남미에서 아르헨티나 말벡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샤토 라그레제트

대표 와인 샤토 라그레제트는 20~3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선별 수확한 말벡에 메를로 14%, 따나 1%를 섞어 만듭니다. 새 오크통과 1년된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8개월 숙성한 뒤 필터링 없이 병입하는 이 와인은 강렬한 루비색을 지녔고 코코아와 붉은 과일의 향이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연간 10만병을 생산하다 품질관리를 위해 7만병으로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레제트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레제트(Chevaliers du Chateau Lagrezette)는 라그레제트의 센컨드 와인으로 말벡에 메를로 21%, 따나 6%를 섞었습니다. 15년 수령의 말벡으로 빚으며 섭씨 8도의 저온 침용통해 풍부한 향을 잘 뽑아냈습니다. 12개월 오크숙성한 뒤 역시 필터링 없이 병입합니다. 붉은 과일과 검은 과일향을 모두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체리 향이 풍부해집니다. 생산량은 연간 6만∼7만병에 불과하며 2달이면 다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샤토 라그라제트 퍼플 오리지널 말벡

샤토 라그라제트 퍼플 오리지널 말벡(Purple Original Malbec)으로 까오르의 오리지널 말벡을 재현했다는 자부심을 담은 와인입니다. 말벡에 메를로를 6% 블렌딩했습니다. 석회암 토양에서 자라는 평균 20년 수령의 말벡으로 빚는데 발효할때 4일동안 섭씨 8도의 저온침용을 거쳐 거친 탄닌은 줄이면서 풍부한 향을 이끌어내 말벡 특유의 붉은 과일향과 부드러운 탄닌을 지닌 오리지널 말벡이 탄생했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