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중 악수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AP연합뉴스 |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3일 “(합의) 내용으로 보면 13년 전 9·19 공동성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임은 분명하다”며 “시한도 없고 검증방법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 당사국 사이에 합의된 9·19 공동성명에서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프로그램 포기 △조속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복귀를 명시했다.
북·미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선언적 규정만 포함됐다. 천 이사장은 다만 “공동성명에 CVID가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미·북 회담이 재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북·미 간 세기(世紀)의 핵 담판 승자도 결국 협상의 달인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닌 김정은 위원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김 위원장은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를 통해 명실상부한 국제 외교 무대에 데뷔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부각하는 이득을 얻었다.
역사적 회담 개최 자체에 점수를 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날 싱가포르 코리아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성과와 전망’ 토론회에서 이번 회담에 대해 “70년간 유지돼 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며 “센토사 선언(김정은·트럼프 선언)은 9·19 공동성명에서 정한 원칙, 즉 ‘말 대 말에 해당하는 공약에 따른 것으로 보이고 이후 열릴 실무회담을 통해서 ‘행동 대 행동’의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을 하도록 미뤄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토론회에서 “누가 예상하는 것보다 속도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속도가 약간 줄어든 느낌을 주는 것일 뿐 사실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는데 속도가 줄어든 것 아닌가 하며 실망하는 것은 이르다”고 평가했다.
이어 “CVID는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의심을 통해 끝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개념으로 근본주의적 CVID는 지구상에서 불가능한 목표”라며 “리얼리스틱한(현실적인) CVID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말의 성찬(盛饌) 속에서 김 위원장이 떠안은 과제도 적지 않아 일방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승자는 트럼프라고 본다”며 “북한은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가 궁극적 목표인데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쉽게 해제되기도 어렵다”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모두 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에게도 부담이기 때문에 카드가 많은 트럼프가 (협상장에) 핵무기만 달랑 들고 온 김정은을 갖고 논 게임이었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김민서·김예진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