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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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문 닫았던 北식당 다시 북적… 단속 느슨하자 밀무역 성행

달라진 상가 분위기 / 상인들 “이번엔 다를 것” 기대감 / 北·中간 교역 파탄 우려 사라져 / 최근 컨테이너로 신발 대량 주문 / 밥솥 등 실생활 용품도 많이 취급 / 북한인 다시 넘어오며 관심 커져 / 십자수 등 北수공예품 많이 팔려 / 신의주·금강산 관광상품도 인기
북한과 인접한 중국 랴오닝(遙寧)성 단둥(丹東)이 들썩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지난 14일 찾은 단둥은 북한 개방과 경제·무역 활성화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다. 6개월 전 침울했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엔 북·중교역 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이날 단둥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는 “많은 사람이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경제가 활성화되면 아파트, 집값, 땅값부터 오르는 것 아니냐, 황금평에 중국 기업 2000여개가 들어간다는 말도 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고려거리의 북한식당 지난 14일 정오 무렵 찾은 단둥시내 고려거리 인근의 북한 식당. 북한 여종업원들이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북한 상인, 컨테이너로 신발 주문”

14일 오후 4시 23분, 단둥역 역사 안으로 이날 새벽 평양에서 출발한 ‘85호’ 베이징행 열차가 도착했다. 북한을 다녀온 중국인과 국경 검문을 마친 북한사람 100여명이 역사 내 왼쪽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단둥을 찾은 북한사람들은 다양했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보였고,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가슴에 단 청년도 있었다. 큰 여행 가방에 돈 가방을 옆으로 멘 무역상으로 보이는 북한사람도 눈에 띄었다. 배지가 없으면 북한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지에서 만난 한 단둥 시민은 “옛날엔 옷차림으로도 구별이 됐지만,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과거엔 인민복이나 검은색 계통 옷이 많았지만, 지금은 옷도 화려해졌고 흰색 옷도 있다”고 전했다.

단둥 고려거리 인근 도매 물품을 처리하는 상점 밀집 지역에도 북한 상인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선족 대북 사업가는 “거의 모든 물품을 다 취급한다. 최근엔 신발이 많이 나가는데 종류별로 몇 켤레씩 주문하면 컨테이너를 통해 북한으로 운반한다”고 했다. 최근 늘어난 소상인들이 저가 의료기기나 신발, 밥솥, 팬티, 양말 등 실생활 용품들을 많이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 사업가는 “옛날에는 발전기도 많이 나갔는데, 제재 품목인지 전기 사정이 좋아졌는지 몰라도 요즘엔 잘 안 나간다”고도 했다. 또 선물용으로는 연필이나 공책 등 학용품이 인기가 있다고 했다.

중국 내 북·중 합작기업 불허 조치로 올해 초 거의 문을 닫았던 단둥 내 북한 식당들이 하나둘씩 문을 여는 것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했다. 한 요식 업계 관계자는 “원래 10여개 정도 북한 식당이 있었는데 올해 초엔 한 곳을 제외하고 다 문을 닫았다”며 “최근 들어 다시 문을 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인을 받지 않던 식당들이 한국인이 찾아가면 잘 응대해 주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 정세 변화와 정치 관련 내용에는 민감한 모습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대부분 못 들은 척했다. 또 “요즘 한국인이 많이 오느냐”고 질문했지만, 얼굴을 휙 돌리며 대응하지 않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해외 북한 노동자 비자 갱신과 노동자 신규 파견이 금지돼 북한 여종업원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북한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며 “인근 중국인 식당에 모여 조용히 생활하다가 최근 다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관 기다리는 화물트럭 통관을 기다리는 북한과 중국 화물트럭들이 지난 14일 단둥 세관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대북 경제제재로 북한과 중국의 교역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세관 앞에 대기하는 화물 트럭이 줄었으나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북한 수공예품 인기… 밀무역도 여전히 성행

북·중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인들이 다시 많이 넘어오면서 단둥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북한 수공예품이 중국인 일반 가정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북한 여행도 과거보다 관심이 높아졌다고 현지인들이 전했다. 특히 북한산 십자수나 그림 등이 인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분위기가 호전되면서 단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밀무역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북·중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했다. 밑바닥에서는 당연히 관계 개선의 신호로 보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일선에선 단속이 느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제재 대상 품목인 북한산 생선이나 조개 등은 단둥 수산물 시장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그는 “야간 해상에서 북·중 선박 간에 만나서 물건을 넘겨받는 식으로 밀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올해 초만 해도 밀수가 적발되면 선주까지 처벌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올해 초 기세등등했던 경찰들의 해양 단속 선박들이 모두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렸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북한 여행도 인기다. 호텔 로비나 단둥 역사 앞에는 북한 여행을 홍보하는 간판이나 플래카드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신의주 하루 여행코스가 비교적 인기가 많은데, 아침에 신의주로 들어가 관광하고 점심 먹고 돌아오는 데 약 290위안 정도 든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가족들과 함께 4박 5일 금강산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용은 약 2900위안 정도 든다”면서 “최근 단둥에서 북한 여행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는 터라 우리 가족도 한 번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단둥=글·사진 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