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날씨가 왜 이래’부터 시작된 혼잣말은 ‘괜히 제비를 취재한다고 나섰다가 사서 고생이네’에 이른다. 그 흔한 제비, 뭐 볼 게 있다고….
순간 멈칫.
‘제비를 본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생활 속에서 제비를 본 적이 없다. 제비뿐일까. 비둘기와 참새, 그리고 이따금 한강까지 날아오는 갈매기를 빼면 동네에서 딱히 새를 본 기억이 없다.
‘나는 ‘새알못’(새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새삼스레 반성하고 있을 때쯤 보광동 우사단로 고갯길에서 제비 탐사를 안내해 줄 조수정씨를 만났다.
◆사람+물가+지붕=제비 명당
조씨는 제비를 모니터링하는 ‘자연관찰자’다. 서울에서 제비 모니터링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생태보전시민모임이 있는데, 이곳과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저 역시 사는 데 바빠 주변에 제비가 사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저희 동네에도 제비가 제법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비에 관심이 생겼고 완전히 빠졌죠. 그 작은 몸으로 강남에서 날아와 두 번에 걸쳐 새끼를 길러낸다는 게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잖아요.”
제비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을 즈음해 필리핀 등지에서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5∼7월 둥지에 알을 낳고 달포가량 새끼를 길러낸 뒤 2차로 또 알을 낳는다. 먼저 태어난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는데 완전히 독립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새 옆에 머물며 2차로 태어난 동생들을 돌보기도 한다.
제비 모니터링은 둥지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제비는 귀소본능이 매우 강해 한 번 둥지를 지으면 몇 년이고 계속 같은 곳으로 날아온다. 둥지를 보면 제비가 몇 마리나 사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몇 걸음 옮기자마자 한 교회 부속건물에서 둥지를 발견했다. 주차장으로 쓰는 필로티 공간이었다.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가게의 차양막 아래, 빌라 출입문 위나 발코니 아래 여기저기에 둥지가 있었다. 이렇게 사람 왕래가 잦은 곳에 있다니 숨은그림찾기를 할 때처럼 찾기 전에는 ‘진짜 있는 게 맞나’ 싶다가 찾고 나니 ‘왜 이걸 몰랐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비는 진흙으로 둥지를 짓기 때문에 강가와 가까운 곳에 살아요. 비와 강한 햇빛은 막아주면서 드나들기 쉽게 트여 있는 공간을 좋아하고요.”
한강에서 가깝고 지대가 높은 우사단길은 이런 면에서 제비를 위한 명당이다. 물가와 가깝고, 구형 주택이나 필로티 형태의 빌라가 많은 동네라면 제비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조수정씨 제공 |
이날도 보광동과 한남동, 동빙고와 서빙고 일대 24곳에서 제비둥지를 찾았다. 한 곳에 둥지 3∼4개가 나란히 ‘둥지 빌라’를 이룬 곳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은 내구연한이 30∼40년이지만, 제비 둥지는 길면 80년까지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실공사는 제비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둥지가 새끼 무게를 못 버티고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날도 한남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보수 흔적이 역력한 둥지를 발견했다. 본래 둥지와 은박테이프가 겹겹인 ‘인조(人鳥) 합작’ 둥지였다.
“지난해에 요 앞 열쇠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떨어져 있는 둥지를 발견해서 그 옆 김밥집 주인이랑 같이 은박테이프로 복구해 주셨어요. 올해는 그 둥지에 또 제비가 날아와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 재보강을 했고요.”
지난 2일 생태보전시민모임과 둘러본 성동구 용답역 일대도 제비 생활상은 비슷했다. 청계천에서 가깝고 오래된 주택이 밀집한 이곳에서는 무려 35개의 둥지가 발견됐다.
◆사람 따라다닌 제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제비는 왜 사람 곁을 맴도는 걸까. 야생동물은 보통 인간을 피하기 마련이지만 제비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주변에 머물렀다. 산에 사는 새호리기와 말똥가리를 피해 맹금류보다 덜 무서운 사람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산청군과 진주시 등 경남지역에서 10년째 제비 모니터링을 해온 오광석씨(초등학교 교사)는 “제비는 주택에서도 특히 대문 위처럼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곳을 좋아한다”며 “심지어 가게나 방 안까지 들어와 둥지를 짓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대대로 보면 사람도 제비에 우호적이었다. 과일이나 곡식을 쪼아먹는 까치와 달리 날벌레를 잡아먹는 제비는 해충 방제 효과가 컸다.
조건 없이 제비를 아끼는 이들도 많다. 용산구와 성동구에서는 혹시나 둥지가 떨어질까 싶어 지지대를 만들어 놓은 사례가 제법 있었다.
한남동에서는 얼마 전 가정집에 달려 있던 둥지 하나가 떨어져 새끼 4마리 중 1마리가 죽었다. 집주인은 열쇠가게 할아버지처럼 페트병을 잘라 ‘플라스틱 둥지’를 만들어줬다. 제비는 사람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플라스틱 둥지에서 나머지 새끼 3마리를 씩씩하게 기르는 중이라고 했다.
도시 제비 탐방기가 동화처럼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면 좋으련만, 제비의 도시살이는 갈수록 새드 엔딩으로 기울고 있다. 가장 큰 위협요소는 재개발이다. 마포구 염리동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둥지가 수십개씩 발견된 서울의 대표적인 ‘제비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올해부터는 더 이상 제비를 볼 수 없게 됐다.
신동근 생태보전시민모임 팀장은 “아마 서울에서 제비가 갑자기 늘어난 곳이 있다면 (환경개선 효과라기보다는) 염리동 재개발지역 같은 곳을 피해 제비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둘러본 용산구 보광동과 한남동, 성동구 용답동도 모두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빈집이 많아 을씨년스러운 골목도 있었다.
기자가 지난 15일 강서구 등촌동에서 발견한 제비 가족. |
일본에서는 이시카와현에서 1972년부터 100개교 이상의 학생들이 제비둥지를 전수조사해 오고 있다. 이 조사에서는 1985년 3만6740마리였던 제비가 2005년 1만3757마리로 준 것으로 집계됐다.
시골마을 공동화도 사람과 함께해 온 제비에게 우울한 징조다. 이찬우 경상남도 람사르환경재단 박사는 “제비는 집에서 불빛도 새어 나오고 사람 목소리도 들려야 안정감을 느낀다”며 “요즘 시골에 빈집이나 노인 한 명이 사는 집이 많아 농촌에서도 제비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도시재개발과 시골마을 공동화라는 큰 흐름 속에 제비의 서식지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조수정씨에게 ‘그래도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 경제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어휴, 여기가 재개발되면 얼마나 금싸라기 땅이 되겠어요. 여기 원주민 대부분은 그 비싼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안 돼요. 우리도 제비들처럼 어디론가 떠나야 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주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덟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봤다. 안양천과 가깝고 필로티 건물이 많아 기대를 했지만 둥지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거짓말처럼 제비가 나타났다. 휙 하고 방향을 바꾼 제비는 전깃줄에 내려앉았다. 어른 제비 한 마리, 새끼 제비 두 마리….
그동안 없었던 건 제비가 아니라 작은 동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이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