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갑질문화를 오랜 시간 연구해 온 많은 학자들은 소위 말하는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일상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일시적 보상을 얻기 위해 자신보다 사회적 위치가 조금이라도 낮은 사람에게 ‘한풀이 갑질’을 하려드는 경향이 강해지는 추세라고 분석하고 있다. 갑질이 전 계층으로 확산되는 게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리현상 중 하나라는 지적들도 잇따른다.
올해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가 펴낸 ‘모두가 갑이 되고 싶은 사회’에 따르면 일반인들 역시 자신보다 사회적 위치가 열세인 사람들에게 갑질을 행하고 있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상대적 박탈감, 보상심리, 경쟁사회에서 생존의 욕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 사회적 신뢰의 상실, 그리고 서비스산업경쟁으로 인한 감정노동의 심화 등이 꼽힌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점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이 중산층에서 탈락했다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38.8%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의 43.9%보다 4% 정도 하락한 수치이다. 이 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자신이 중산층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불안감은 오히려 자신보다 약해보이고, 계층적으로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왠지 강해보이고 싶고 계층적으로도 우월해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만든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더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자신보다 부와 권력이 열세인 사람에게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해야 기분이 풀리는 보상심리다. 최 교수는 “이는 일종의 한풀이로써, 그 한을 맺게 한 사람에게 직접적인 복수를 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제 3자,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한을 전이하며 일종의 보상감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7 IMF 사태이후 보다 치열해진 생존경쟁 역시 갑질의 전 계층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혹시나 내 자리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그 조직에서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게 하기 보다는 그들을 경계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편의점 점장으로, 회사의 부장으로 일하지만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 초조감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인턴들을 대하는 데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배려하고 보듬어 같이 발맞추어 나가기보다는 그 사람들을 압박하여 자신이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게 갑질을 부추긴다는 의미다.
더불어 서비스산업의 무한경쟁으로 인해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의 강도가 점차 심해지고 고객들의 갑질에 순응해야만 생존하는 상황이 지속하는 것 역시 문제로 꼽혔다. 실업의 두려움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의 두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감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낯선 이에 대해 신뢰가 굉장히 낮은 사회로 고신뢰사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생각에 배려하고, 실수에 대해선 최대한 관용하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며 “우리 사회는 나와 일시적인 갑을관계에서 을이 약간의 잘못을 하는 것에 대해서 최대한의 권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갑으로서 권력적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