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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11번가 투자 유치…이커머스 업계 판도 어떻게 달라질까?

SK그룹이 자사 오픈마켓 브랜드 11번가를 SK플래닛에서 분리, 오는 9월1일 신설법인으로 공식 출범하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사모펀드(H&Q) 등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도 받는다. 2조77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도 인정받기도 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11번가 독립 이후 커머스 중심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경쟁…SK vs 신세계 vs 롯데

이번 11번가 분리 독립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기존 '유통 공룡' 대기업들의 트라이앵글 경쟁 구도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백화점, 마트 등 8개 계열사의 온라인몰을 하나로 합치고, 향후 5년간 3조원 가량을 쏟아 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신세계그룹도 올해 초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분리되어 있는 온라인사업부를 통합해 연내 이커머스 관련 신설 법인을 만들고, 글로벌 투자운용사로부터 1조원 이상을 투자받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11번가도 이번에 독립을 꾀하면서 ‘한국의 아마존’을 목표로 삼았다. 외국계 혹은 토종 스타트업 출신 기업들이 일궈온 이커머스 시장에 국내 대기업들이 도전장을 던진 형국이다.

◆놀랍도록 가파른 성장세…전체 시장 규모 30%, 이커머스 통한 거래

이는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78조22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9.2% 증가했다. 현재 국내 유통시장은 3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이커머스를 통한 거래가 26%에 달하는 셈이다. 이커머스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이 비중은 내년에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구매경험을 했던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생활필수품이나 패션 제품뿐 아니라 신선식품, 대형가전 등 오프라인에서 주로 판매되던 제품을 모바일에서 구매하는 이용자들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같은 ‘OO페이’ 형태의 간편결제 및 송금 서비스 이용 실적은 하루 평균 1023억원으로, 1년 전 328억원 보다 3.1배 늘어났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지난 4월 기준 온라인 쇼핑 거래액 가운데 모바일 비중이 61.6%를 차지했다. 쿠팡, 위메프, 티몬 등 2010년 스마트폰 환경을 기반으로 시작한 소셜커머스 모바일 판매량은 전체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오픈서베이의 ‘2018 상반기 모바일 쇼핑 트렌드’에 따르면 만 20~49세 남녀 1000명 응답자 가운데 91%가 모바일 쇼핑을 경험했으며, 최근 3개월간 구매 또한 모두 모바일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프라인 채널의 가장 큰 장벽 요소로 시·공간 접근성 제한, 가격 불만족 등을 꼽았다. 그만큼 이커머스 가격 메리트 중요도가 커졌다는 뜻이다.

◆"대기업? 따라 올테면 따라와봐" 토종 스타트업, 경쟁력 갖추고 정면 승부 펼친다

G마켓·옥션·G9 등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이커머스 대기업인 이베이코리아에 이어 국내 대기업들이 이커머스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모바일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국내 스타트업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약진을 보여주는 곳은 위메프다. 가격에 집중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위메프는 연내 단일 채널로서 월 거래액 6000억원을 달성, 이커머스 선두 자리를 넘보겠다는 각오다.

적자의 늪에 빠진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베이코리아를 제외하면 주요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흑자 전환을 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쿠팡도 '로켓배송' 등을 내세워 이커머스 업계 매출 기준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한 때 물류비용 등으로 다소 힘겨웠던 시절도 있었으나, 소프트뱅크 등 굵직한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티몬도 여행, 비디오 커머스, 슈퍼마트 등 톡톡 튀는 '틈새 경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적자 1185억원을 기록, 수익성 개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업력과 자본금이 부족한 소셜 3사들이 대기업들의 파상 공세 속에서도 시장 주도권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며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고객을 확보한 것도 이들의 경쟁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문제는 적자다. 지난해 이베이코리아를 제외하면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기존 유통 대기업들도 온라인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자금력을 동원하여 출혈 경쟁을 벌일 경우 올 하반기 이커머스 시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커머스, '성장' '수익성'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준비책 마련도 분주하다.

이미 앞서 쿠팡은 올 초 5000억원 상당의 증자를 진행, 자금을 확보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업계 유일한 흑자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위메프도 이베이코리아와 더불어 주요 이커머스 가운데 유일하게 2년 연속 현금 흐름 '플러스(+)'에 성공했다.

이들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각각의 장점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출혈 경쟁과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다소 비관적인 시각이 존재했던 이커머스 산업이 최근 11번가의 대규모 투자 유치 성공으로 대내외적으로 성장성을 인정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이커머스 시장은 새롭게 시장에 등장한 기업들이 기존 유통시장 문법을 파괴하며 혁신함으로써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사례가 적지 않다"며 "올해 대기업과 이커머스 스타트업이 진검승부에 나선 만큼, 가격과 서비스 등에서 소비자와 판매자에게 혁신과 혜택을 가장 크게 제공하는 업체가 결국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11번가 투자 유치를 통해 이커머스 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며 "금액이 적지 않고 보수적인 연·기금이 투자했다는 점도 미래 성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1번가 입장에서는 분사를 통해 몸집을 가볍게 함으로써 빠른 의사결정 필요한 이커머스 업계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며 "조직 구조나 사업 결정 등 유연한 대처를 하기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