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계단의 용도는 무엇일까? 대부분이 “오르내리는 통로 아니냐”고 답할 게 분명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변이다. 공동주택인 아파트 계단은 출입이 아니라 비상시 대피용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가 의외로 드물다.
이송규 안전전문가·기술사 |
아파트나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계단 내부의 아래쪽에서 기계적인 힘에 의해 자동으로 공기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내부 압력이 세다 보니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올 수 없다. 바로 양압식 계단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환자를 수용하는 병실은 음압식 원리가 적용된다. 병실 내 병균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병실 공기압을 바깥보다 낮춰놓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양압식 계단은 화재가 났을 때 계단 내부로 연기가 새어들지 못하도록 해준다. 계단과 연결된 문은 방화문으로 되어 있다. 화재시 입주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게 해주는 공간이 바로 계단이다.
지난 1월 발생한 세종병원 화재를 돌이켜 보자. 이 병원은 양압식 계단이 적용되지 않았으나 계단 문을 닫아둬야 하는 이유는 같다. 당시 불은 1층 응급실에서 났는데 3, 4층을 제외한 1, 2, 5층에 희생자가 몰렸다. 3, 4층 계단 문은 닫혀 있었으나 1, 2, 5층 문은 열려 있었다. 1층에서 발생한 연기가 계단을 통해 2, 5층으로 퍼지면서 해당 층의 피해를 키운 것이다. 물론 연기가 퍼진 계단은 대피용으로 무용지물이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심코 아파트 계단 문을 열어 놓고는 한다. 문을 열어놓으면 공간이 넓어 보여 답답하지 않고 선선한 공기가 복도로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 상태에서 화재가 난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계단과 연결된 문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계단 내부의 공기 압력은 외부와 엇비슷해져 버린다. 자연스럽게 계단에도 연기가 들어찰 수밖에 없다.
아파트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가장 안전한 공간이 계단이다.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계단 문을 항상 닫아둬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계단 내부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재료로 되어 있어 화재 발생 시 일정 시간 불이 붙지 않는다. 하지만 계단에 쓰레기나 택배용 배달 상자 등이 놓여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오피스 건물의 계단에는 간이 쓰레기통이 구비되어 있고 다용도실의 한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불에 타지 않는 물건이더라도 계단에 놓아두면 대피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평소 안전수칙만 제대로 준수해도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계단은 출입용도가 아니라 대피용임을 명심하고 이제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 아파트 계단으로 통하는 문은 꼭 닫아 놓고 계단에 아무 것도 놓지 말아야 한다. 건강을 지키겠다고 계단으로 오르내리면서 정작 문을 닫지 않아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려서야 되겠는가.
이송규 안전전문가·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