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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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일상 속 힐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 쇼크’라는 저서에서 과거나 현재와는 달리 미래형 인간은 관계 지속시간이 짧고 빠르게 변화하는, 높은 ‘일시성’의 조건 속에서 생활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 쇼크’라는 질병에 걸려 삶이 붕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점점 빨라지는 변화 속도에 반하여 시골집을 마련해 주말마다 내려가 농사를 짓는가 하면, 아예 시골로 귀농해 삶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서울에서 임용고시 준비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에 내려와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밭에서 직접 키운 야채로 자신만을 위해 요리해 맛있게 먹는 모습은 도시생활에서 밀려 돌아온 고향이 아니라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우아한 삶이다. 이 영화는 일본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약간 불편할 뿐 매연이나 미세먼지 걱정도 없는 청정자연 속에서 자신이 직접 키운 농산물로 요리해 먹으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일본에서도 같은 원작으로 4년 전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과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감독 모리 준이치)이 만들어졌다.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어귀에 들어오는 도입부도 한국 영화와 같고, 땀흘리며 풀 뽑고 농사지어 맛있는 요리를 해먹는 이야기 구조도, 가끔 집 떠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 살아가는 것도 같다. 일본 영화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오리를 키워 오리농법으로 친환경농사를 짓거나,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양어장 일을 돕는 등 농산물 외에 다양한 먹거리를 보여준다. 요리 방식도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켜 빵을 만들거나 감주를 직접 만들어먹는 등 전통적 방식을 추구한다. 요리의 종류만 조금 다를 뿐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영화는 말로만 듣던 슬로라이프, 슬로푸드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최근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한 경북 군위 ‘혜원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혜원의 집 방문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살던 혜원의 미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지친 삶에 위로를 준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은 문득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든다. 힐링이 필요한 시대다. 이번 휴가는 맑고 푸른 하늘, 숲이 둘러싸인 시골로 가서 행복감을 충전하는 것은 어떨지.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