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어른도 도움이 필요…‘성년후견 제도’를 아시나요

1일 도입 5주년 / 금치산·한정치산 선고 효력 사라져 / 전문가들 “인식 제고 등 필요”
기초생활수급자인 A(69·여)씨는 2014년쯤 치매 진단을 받았다. 외아들은 그에게 욕설을 하는 등 학대를 일삼았다. 기초생활수급비는 술값으로 탕진하기 일쑤였다. A씨가 경찰에 직접 신고한 적도 있었다.

A씨의 이런 어려운 가정 형편을 잘 아는 동주민센터 복지 담당 직원은 관할 지방검찰청에 후견인 선임 청구 절차를 문의했다. A씨에게 후견인이 생기면 A씨가 보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현행 민법상 검사도 법원에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담당 검사는 관할 가정법원에 A씨에 대한 후견 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해 특정후견(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 후원 또는 특정 사무 후원) 개시를 결정하며 사회 복지사 B씨를 후견인으로 선임했다.

그 뒤 A씨는 B씨 도움을 받아 거주지를 옮기고 기초생활수급비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서 여생을 보다 편안히 보내고 있다. B씨는 그런 A씨를 위해 무보수로 일한다.

지적 장애인 C(31·여)씨도 후견인이 선임된 뒤 삶의 질이 한결 나아졌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C씨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후견인과 의사소통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활용하게 되면서 증상이 완화됐다고 한다.

이들처럼 노령·장애·질병 등의 사유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없애고 성년후견 제도를 도입한 지 1일 5주년을 맞았다.
이날 대법원에 따르면 민법 개정으로 2013년 7월1일 성년후견 제도가 도입된 뒤 지난해 말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성년후견 심판 청구 사건은 총 1만7116건에 달한다. 이 중 1만534건이 받아들여져 후견이 개시됐다. 612건은 기각됐고 나머지는 처리되지 않은 경우 등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와 맞물려 치매나 인지 기능 장애 등 노인성 질병이 증가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성년후견 제도에 대한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도가 자리 잡으려면 대국민 인식 제고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년후견 제도는 ‘치매나 발달·정신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의사 결정을 가족이나 친척, 주변 사람들이 법적 권한 없이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면서도 “치매나 발달·정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복지법인 성민의 윤선희 성민성년후견지원센터장은 “치매 유병률을 생각해 보면 성년후견 제도는 모든 사람이 이용자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한 제도이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인식 제고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부터 기존의 금치산·한정치산 선고 효력은 사라진다. 이에 따라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가운데 후견인 선임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각각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 심판을 법원에서 새로 받아야 한다. 대법원은 올해 3월 현재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가 각각 약 1000건, 1020건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