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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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재기해’, 젠더 이전 인간으로 용납안되는 패륜적 언어”

[스토리세계-‘문재인 재기해’ 논란②] 역사학자 전우용 비판
현직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대학로 혜화역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문재인 재기해”라고 구호를 외친 것과 관련해 “젠더 이전에, 인간으로서 용납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고 질타했다. 그는 그러면서 “패륜적 언어에 익숙해지면, 사고 자체가 패륜화하기 마련”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 캡처
◆전 교수 “젠더 이전에 인간으로 용납 안되는 말”

역사학자인 전우용 한양대 연구교수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혜화역 시위에서 시위자들이 외친 “문재인 재기해” 표현과 관련해 “제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저런 패륜 구호가 나오는 데에도 주변에 말리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진행자는 오히려 ‘문제를 제기해’라는 뜻이라며 사실을 호도했답니다”라며 “갈등이 심각한 것도 문제지만, 갈등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 패륜적인 것이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자살’로 속죄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었나요? ‘문재인 재기해’는 젠더 이전에, 인간으로서 용납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저런 구호를 외치는 자들조차 억누르지 못한다면, 그 집단에 ‘자정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라고 거듭 되물었다.

◆“패륜적 언어 복제하며 공격 대상까지 복제”

전 교수는 이어 9일 페이스북 글에서 혜화역 시위에서 2년 전 ‘메갈 옹호 담론’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을 거론한 뒤 “이번 ‘문재인 재기해’ 사태와 관련해서는 특히 그들이 일베의 패륜적 언어를 복제하면서 공격 대상까지 복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생각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며 “패륜적 언어에 익숙해지면, 사고 자체가 패륜화하기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즉 “난민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남북 관계의 진전을 저주하며 박근혜를 ‘추앙’하는 점에서 근래의 ‘워마드’는 일베와 완전히 똑같은 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패륜 전위부대로 삼은 본대 승리 불가”

전 교수는 ‘일베’의 사례를 지적한 뒤 “워마드를 중심으로 한 일부 여성들이 집회 장소에서 ‘문재인 재기해’를 외친 건, 그들의 ‘생각’이 일베와 똑같다는 걸 드러낸 데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문제는, 저 패륜 집단을 여전히 ‘한국 페미니즘의 선봉이자 전위대(前衛隊)’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라며 “설령 현재의 한국 사회가 ‘성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패륜 집단을 전위부대로 삼은 본대가 승리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재기해’는 ‘문제를 제기해’라는 뜻이라며 씨도 안 먹힐 거짓말로 워마드 따위를 비호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전망하는 걸까요?”라고 되물었다.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뉴시스
◆“신지예 발언, 래디컬 페미의 문제 드러내”

전 교수는 이날 올린 또다른 페이스북 글에서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문재인 재기해’는 여자들이 그동안 당한 거에 비하면 별일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 “저는 바로 이런 생각과 언설이 한국 래디컬 페미니즘의 핵심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신 전 후보는 지난 9일 KBS1 ‘사사건건’에 출연해 “주최 측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일부 참가자들이 쓴 거로 알고 있다”며 “여성들이 당해온 거에 비해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전 교수는 “‘여성해방운동’은 ‘남성 지배체제’ 해체 운동이되 ‘남성 젠더를 가진 사람’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는 운동”이라며 “남성 젠더가 소멸하는 동시에 인류 자체가 소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극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운동은 흔히 폭력투쟁이나 내란의 양상을 보이지만, 상생 관계는 그렇게 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위대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주최 측 “사전적 의미로 구호 사용” 설명

한편 지난 7일 혜화역 인근에서 ‘불편한 용기’ 측이 주최한 ‘제3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편파수사’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고 발언한 것을 비판하고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를 외쳤다. ‘재기해’는 2013년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는 말로 알려져 있다. 주최 측은 “사전적 의미에서 ‘문제를 제기하다’는 의미로 구호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