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의 선수와 3명의 심판 외에 경기장에 존재하는 유일한 변수는 바로 축구공이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더라도 공을 둘러싼 조각의 수, 재질, 이음매 등에 따라 축구공의 속도와 진행방향은 제각각이다. 그동안 사용된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구를 보면 대수롭지 않을 것 같은 축구공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알 수 있다.
정동훈 광운대 교수 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 |
공인구가 처음 채택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축구공의 모양은 6각형 조각 20개와 5각형 조각 12개를 이은 32장으로 구성된 디자인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공인구로 채택된 ‘팀가이스트’는 그동안의 전통을 깬 14조각의 프로펠러 모양으로 만들어져 더욱더 원형구조에 가깝게 됐다. 조각의 수가 줄어들었으니 조각과 조각이 만나 이음매가 필요한 곳도 60곳에서 24곳으로 줄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의 공식 경기구로 사용된 ‘자불라니’는 3차원의 곡선 형태로 된 가죽조각 8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조각의 수가 더 적어져 6개의 폴리우레탄 조각으로 만든 ‘브라주카’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최초의 공인구로 선정된 축구공인 ‘텔스타’의 이름을 따서 ‘텔스타 18’로 명명됐는데, 조각의 수는 6개로 전 대회와 동일하지만 질감 있는 조각이 접착된 형태로 만들었다.
좋은 축구공이란 공을 찬 선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컨트롤하기 쉬우며, 공의 궤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공을 만드는 조각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완전한 원의 형태를 갖게 된다. 그리고 공이 완전 구형이 될수록 공기의 영향을 적게 받기에 원래 의도된 방향으로 정확하게 갈 수 있다. 32조각이었던 공이 6조각이 된 이유다.
공의 질감은 속도와 비거리를 좌우한다. 골프공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골프공을 보면 조그맣게 파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딤플이라고 한다. 딤플은 공기저항을 줄이고, 공 표면에 ‘터뷸런스’라는 난기류를 발생시켜 양력(揚力)을 크게 해 비거리를 늘려준다. ‘텔스타 18’ 역시 공 표면에 있는 무수한 미세 돌기가 공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비거리를 늘린다. 또한 이음매 길이가 줄수록 공의 움직임은 더 부드러워지지만 공의 흐름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텔스타 18’은 ‘브라주카와 마찬가지로 6면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지만 전체 이음매는 오히려 30% 더 길게 만들었다.
이음매가 더 많아져 생긴 거친 표면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이음매를 더 얕게 만들었고,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이전보다 더 줄였다. ‘텔스타 18’의 표면과 이음매 사이의 최대 높이 차이는 1.108mm이고, 조각과 조각 사이의 가장 넓은 거리 차이는 3.312mm이다. 이는 ‘브라주카’가 각각 1.402mm와 4.006mm인 것에 비하면 26.5%와 20.9%가 짧은 것이다. 1mm도 안 되는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공기역학 때문이다. 축구공 조각과 이것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이음매로 인해 축구공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은 달라진다. 바로 이 차이가 축구공의 불규칙적 떨림을 만들거나, 고속으로 날아갈 때 비대칭의 공기 흐름으로 바나나킥을 만들기도, 무회전 킥을 만들기도 한다.
둘레 69cm, 무게 440g의 축구공이 만든 대축제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메시의 현란한 드리블, 호날두의 무회전 킥, 노이어의 환상적인 방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축구장 내외에 스며든 기술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흥미진진한 러시아 월드컵이다.
정동훈 광운대 교수 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