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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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투자협약 돌연 연기… 완성차 공장 설립 사업 '공회전'

광주시·현대차 협상 안갯속 / 지자체 ‘상생 일자리 실행’ 추진 / 기존 업계 절반수준 임금 낮춰 / 일자리 대폭 늘리기 정책 추진 / “구조적 왜곡 완화 위해 필요” / 이견 못좁힌 현대차 MOU 연기 / 노조 “다른 지역 일자리 뺏을뿐” / 산단 공사 한창 불구 협상 제자리 / 일각선 사업 지속가능성도 의심
지난 5월31일 ‘빛고을’ 광주광역시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광주시가 추진 중인 합작법인 형식의 완성차 공장 설립 사업과 관련 현대자동차가 지분 투자 의사를 명시한 사업 참여 의향서를 보내온 것이다. 이 공장 설립은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 정책의 첫 사례로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사업이었다. 사실상 현대차의 참여 여부가 사업 성패의 관건이었다. 광주형 일자리란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임금을 기존 업계 절반 수준인 연봉 4000만원 미만으로 묶는 대신 일자리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10일 광주시와 전남 함평군 경계에 자리한 빛그린국가산업단지 공사현장. 김승환 기자
광주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대차와 주 3회 협상에 합의하고 6월19일 투자 협약식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 협약식은 열리지 못했다. 바로 전날 광주시가 투자 협약 연기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합작법인 이사회 구성, 경영책임 부담 등 세부사항에서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13일 광주시·현대차에 따르면 이 완성차 공장 설립 사업은 현재도 공회전 중이다. 현대차가 투자 의향서를 제출한 지 40여일, 예정됐던 투자 협약식이 취소된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투자 협약 재개 일정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현대차 노조는 이 사업 타당성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 외 다른 지역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란 우려에서다. 

◆지체되는 ‘실험’

지난 10일 기자가 찾은 ‘빛그린국가산업단지’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광주시와 전남 함평군 경계에 자리한 이 산업단지는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의 첫 사례로 추진 중인 완성차 공장 자리다. 2014년 10월 착공 이후 4년7개월 만인 내년 5월 준공 예정이다.

빛그린산단이라는 ‘실험실’ 준비는 채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정작 광주형 일자리라는 ‘실험’은 광주시-현대차 투자협약 연기로 표류하고 있다. 투자협약이 체결되더라도 공장을 설립해 가동하기까지 통상 2∼3년 걸리는 데다 그 전에 막대한 투자금을 확보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업계 전망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전반의 노동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구조적 왜곡’을 완화할 계기로 평가받는 만큼 하루빨리 그 추진이 필요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는 차 산업의 진로를 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적 왜곡의 핵심은 기존 완성차업체의 고임금 구조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광주시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 노사관계의 내용적 주안점은 지나치게 물질적, 양적 보상에 있다”면서 “숙련과 참여 등 질적 차원에서 생산조건의 혁신은 등한시한 채, 어떻게 하면 노동시간을 늘려 최대한 양적 보상을 개별 조합원에게 안겨다 줄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노조의 행태와 그걸 인정하고 또 조장하는 사측 태도 모두에서 이 문제가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자체, 지역 시민단체, 노사 등 다양한 주체의 대타협을 통해 임금을 기존 완성차 업체 대비 크게 낮춘다는 구상이다. 대신 노동이사제 도입, 노사협의회 강화 등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주는 식이다. 고임금 구조의 완화는 완성차 업체에 국내 투자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추가 투자가 이어지면 자연스러운 일자리 창출을 꾀할 수 있다는 게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 논리다. 

◆의심받는 지속가능성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 빼앗기’라고 주장한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로 다른 지역 일자리가 줄어드는 풍선효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노조 측의 풍선효과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광주 공장에서 생산할 차량은 그간 구조적으로 기존 현대차 공장에선 만들 수 없던 차종이기에 다른 공장의 일감을 뺏어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차와 광주시는 광주 공장에서 1000㏄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생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최근 상표권 출원을 완료한 ‘레오니스’가 그 새 차량의 이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 같은 소형차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 현대차 공장에서 소형차를 생산할 경우 높은 임금 탓에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상품성을 제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기아차의 소형차인 레이, 모닝도 이런 이유로 위탁 생산한다.

노조는 국내 소형차 시장 규모에 비해 계획상 광주 공장의 연 생산 능력이 과도해 국내 산업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현재 외부에 알려진 광주 공장의 생산 규모는 연 10만대 수준이다. 국내 소형 경차·SUV 판매 시장은 12만대 수준이다. 더욱이 전 세계 차 산업은 30% 정도 공급과잉인 상태라 세계 곳곳에서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어, 광주 공장 건설은 차 산업의 큰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차 산업은 약 1억3300만대 생산능력에 약 9400만대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실적 또한 2015년 801만대를 찍은 이후 788만대(2016년), 725만대(2017년)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일각에선 광주형 일자리 실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생산 차량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할 경우 광주시는 어마어마한 빚을 뒤집어쓸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공장 사업비는 총 7000억원이고 이 중 4200억원이 금융권 차입분, 나머지 2800억원이 자기자본금이다.

다만 이런 위험에도 광주형 일자리 실험은 현재 위기 상황인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꼭 필요한 시도라는 의견이 많다. 김필수 교수는 “노조가 자기네 임금을 낮춘다든가 하는 희생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실험을 방해만 하려고 하는 건 이기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광주=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