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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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신뢰가 없으면 못하는 것들

약속 남발하는 이는 신의 없어 / 권력·돈·명예 위해 어기기 일쑤 / 힘·시간 가진자가 먼저 지키고 / ‘노블레스 오블리주’ 되새겨야
조선조 효종 때 판서 벼슬을 지낸 박서(朴?·1602∼1653)는 본관이 밀양이고 자가 상지(尙之), 호를 현계(玄溪)라고 썼다. 어릴 때 당대의 명사 이항복(李恒福)에게 글을 배워 28세에 과거 급제한 뒤 이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에 두 번이나 임명됐다. 그는 신의를 올곧게 지킨 인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일찍이 당시의 풍속대로 부모의 뜻에 따라 어느 규수와 정혼을 했는데, 그 약혼자가 중병을 앓다가 그만 눈이 안 보이게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박서의 부모는 혼약을 파기하고 다른 규수와 결혼시키려 했다. 박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연히 그 부모에게 말했다.

“병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천명이지 사람의 죄가 아닙니다. 불쌍한 아내는 함께 살면 되지만,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박서의 부모는 안타까웠지만 아들의 말이 기특해 그대로 날짜를 받아 혼례를 치렀다. 그런데 신부를 맞고 보니 장님이기는커녕 초롱초롱 빛나는 아름다운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누군가 그 미색을 탐해 헛소문을 퍼뜨린 터였다. 정보의 소통이 어려운 시대라 그와 같은 현혹이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 삶의 길에 미숙한 약관의 인물이 약속과 신의를 지킨 그 사람 됨됨이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영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쉐프츠베리 경이 길을 가다가 한 거지 소녀를 만났다. 불쌍해보여서 돈을 몇 푼 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으나 그날따라 가진 것 없이 나온 참이었다. 그는 소녀에게 며칠, 몇 시에 어느 장소로 오면 오늘 주려 한 돈을 주겠다고, 꼭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약속한 날이 됐는데 마침 그에게 아주 중요하고 바쁜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돈을 보내려고 했지만 쉐프츠베리 경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꼭 가겠다고 소녀와 한 약속을 상기하면서 불쌍한 소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무거운 일정을 버린 것이다.

어리고 힘없는 상대와 한 약속이었지만, 그것을 이행하는 가운데 그의 인격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쉽게 약속을 잊거나, 어기거나, 취소하려는 사람의 인품은 믿기 어렵다. 그것이 아주 작은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개 큰 약속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을 파기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 때이다. 많은 사람이 권력과 금전과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 또는 공동체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이 태연할 수 있는 사회는 후진한 사회요, 그러한 인물은 볼품없는 인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 많이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논리 및 이념이 충돌하는 격변의 현장에 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격하게 요동치면서 오랜 세월 익숙해 있던 지정학적 상황이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한 차례 선거를 지나오면서 이 대내외적 판도를 응대하는 민심도 새로운 유형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약속의 말을 들었고, 여전히 약속의 홍수 속에 있다. 문제는 그렇게 약속을 남발하는 이들이 꼭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의가 없고, 듣는 이들도 그것이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야흐로 골이 깊은 불신의 때다.

약속은 힘과 시간을 가진 자가 먼저 지켜야 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라고 한 것은 파스칼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의 고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와 수준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50세 이하 영국 귀족의 20%가 전사했고, 미국의 케네디와 트루먼 대통령은 신체의 장애를 숨기면서 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나갔다. 입만 열면 허언(虛言)이기 십상인 한국 정치인들, 지도급 인사들의 행태를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지켜야 할 약속과 신의가 무엇인가를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