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뉴스+] 체외진단기 선(先)시판·후(後)평가…'390일' 족쇄 없앤다

정부 ‘육성 방안’ 뭘 담았나 / 안전·유효성 검증받으면 바로 허용 / 의료보험 적용 여부는 사후에 결정 / 인공지능·3D프린팅·로봇 활용 기술 / 임상근거 부족해도 시장 진입 가능 / 영리병원·원격진료 분야는 제외돼
“세계 최초로 의료기기(의료기술)를 발명했는데 정부 규제 때문에 시장에서 사장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의료기기 규제를 대폭 풀며 제도 개선에 나선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나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았더라도 바로 시중에 판매할 수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보급여 적용 여부 결정과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활 치료용 글러브 끼고 탁구 게임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정책 발표를 마친 뒤 병원 내 의료기기 전시 부스를 방문해 재활 치료용 글러브를 끼고 탁구 게임을 하고 있다.
성남=청와대사진기자단

이로 인해 이중규제라는 비판과 함께 세계 의료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데, 정부가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식약처 검증이 끝나는 대로 시중 판매를 허용하고 보험 여부는 사후에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부터 일단 시장에 내놓은 뒤 사후에 평가하는 등 관련 규제가 대폭 축소된다.

19일 정부는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체외진단검사 분야의 신의료기술평가가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바뀐다. 체외진단검사는 질병진단 등을 목적으로 혈액, 분변 등을 채취해 인체 밖에서 검사하는 것으로, 검사과정이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체에 의료기기나 약물을 주입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의료업계는 체외진단검사조차 식약처, 복지부, 심평원 등이 각각 검증하면서 평균 390일을 소모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성토했다.

앞으로는 복지부, 심평원을 거치지 않고 식약처 허가가 나는 즉시 시중 판매가 가능해진다. 사후 평가를 통해 규제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첨단의료기술도 임상적 근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안전성이 높다면 일단 시장진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3∼5년간 해당 기술을 사용한 뒤 그간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한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의료기기 분야에 국한된 만큼 영리병원 및 원격의료 관련 규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재계를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효과 및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등과 관련해 의료산업 규제 개혁 요구가 줄기차게 제기됐다.

의료계와 보건의료노조 등은 영리병원에 대해 “병원비 폭등과 의료공공성 파괴, 의료불평등 심화 등의 결과를 초래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과거 군 부대나 도서지역, 장애인과 노약자 등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지역과 대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강한 반발에 부딪혀 논의가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혁신성장을 실현하는 첫 번째 현장 행보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정책 발표장에서 의료기기 분야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2000년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착수했고,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본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안전성 문제나 의료질 저하, 환자 쏠림현상 심화 등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영리병원과 원격의료는 영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조정 및 인원 감축, 기존 의료계의 입지 약화에 대한 우려와도 맞물려 있는 만큼 공론화 과정 및 의료계와의 협상 등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

이번에 체외진단검사기 등 전문적인 기기와 관련한 규제를 풀었지만 의료시장 발전을 위해 보다 더 큰 틀의 규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현미·김준영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