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Y. 박 지음/유현재 옮김/푸른역사/2만원 |
1609년부터 1894년 사이 실시된 477회의 무과와 무과급제자 3만23727명을 분석한 조선 무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로서 한국학 디렉터를 맡고 있는 저자는 미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해 전산화되지 않은 자료 접근이 쉽지 않았음에도 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자료와 각종 방목(榜目·문무과 합격자 명단) 등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무과의 정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공로가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전과 달리 무과를 대규모로 시행했다. 북쪽 변경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1620년 무과에서는 1만명이 넘는 합격자를 양산하여 ‘만과(萬科)’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1609년부터 1894년 사이 실시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에서는 한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를 양산했다. 실제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해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과가 더 이상 국방을 위한 순수한 의도로 시행되지 않았다. 무관의 지위 하락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무과 응시에 더욱 열을 올렸고,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는 조선 조정이 체제의 대한 근본적인 한계를 무과를 통해 일정 부분 해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층은 독점적으로 향유했던 문화의 일부인 과거 합격이라는 중요한 관문, 특히 무과 관문을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체제 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무과는 체제 수호를 위한 완충장치였던 셈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