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연예계부터 해외 패션계까지 분야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등장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들 스스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동시에 욱일기 퇴치에 대한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티븐연(왼쪽), 티파니. 세계일보 자료사진 |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혁명 기념일 퍼레이드에 참여한 일본 육상자위대가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일장기와 욱일기를 함께 들고 행진했고, 일본항공(JAL)이 수년 동안 기내식 용기 뚜껑에 욱일기 디자인을 사용해온 사실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됐다.
최근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욱일기가 등장한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이 일었고, 다른 내용의 한국어와 영어 사과문을 올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는 한글로는 정중하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영어로는 ‘인터넷상에서의 실수’를 강조한 사과문을 올려 오히려 반감을 샀다.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는 2016년 8월 14일 개인 SNS에 욱일기 디자인이 들어간 이모티콘 문구를 올려 논란이 됐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 더욱 질타를 받았다. 티파니는 논란이 계속되자 두 차례에 걸쳐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고 당시 출연 중이던 KBS2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했다.
아디다스가 판매중인 티셔츠. 아디다스 홈페이지 |
Dior 인스타그램 캡처. |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나부끼는 나치 집회장의 히틀러. |
일본 정부와 기업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욱일기 문양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욱일기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전후 독일은 ‘반나치 법안’을 통해 하켄크로이츠의 자국 내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독일 형법 제86조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 휘장, 제복, 슬로건 등을 배포하거나 공개적으로 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던 인접국 프랑스도 형법 제645-1조에 ‘나치 등 반인류행위범죄를 범한 집단을 연상케 하는 장식 또는 전시를 금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두고 하켄크로이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반면 욱일기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에서도 제재 수단이 없다. 19대 국회 때 국내에서만이라도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외교 문제 등에 대한 우려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욱일기 사용 금지가 쉽지 않은 이유
계속되는 논란에도 당장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60년 이상 군기로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욱일기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1954년 자위대 창설과 함께 부활해 공식 군기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욱일기를 전면 금지하는 법령이 만들어질 경우 일본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이 밖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악행이 국제적으로 덜 알려진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서구권 국가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 수탈을 겪지 않았기에 욱일기가 얼마나 나쁜 상징인지 모르는 데다 일본 정부는 욱일기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스스로 역사에 대해 잘 아는 동시에 세계적 공감대 형성해야”
욱일기는 2차 세계대전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사용한 깃발로 당시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했던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는 역사적인 아픔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범국인 일본이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과거 피식민지국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다.
서경덕 교수팀 ‘일본의 전범기 사용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영상 캡처 |
서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아무런 반성 없이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분명히 전쟁에 사용했던 전범기였다. 그런데 다시 현재에 사용하고 있다는 자체가 가장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켄크로이츠를 법적으로 제재하고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욱일기 사용을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며 “중국과의 연대도 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이번 러시아월드컵 개막 전부터 욱일기 논란이 일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전범기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며 “휴가기간 다른 나라에서 여행할 때 욱일기를 발견하면 적극 제보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