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창수는 자연을 매우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극도로 미시적인 세계에 몰입하여 살핀다. 극과 극의 시선을 통해 상투적인 이미지와 생각들을 떨쳐버린다. 대상의 순수한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인 개인전에서 그는 원경으로 장엄한 히말라야 대자연을 담아냈다. 그 뒤엔 다시 매우 가까운 근경의 미시적 세계로 시선을 옮겼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지난 20일부터 개인전 ‘이 그 빛’을 열고 있는 사진작가 이창수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상을 낯선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가는 “찰나에서 대상의 본질과 무한한 가능성을 담아내고자 한다”고 말한다. 학고재 제공 |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개막한 이창수 개인전 ‘이 그 빛’은 섬진강 수면의 빛을 촬영한 33점의 사진과 1점의 영상을 소개한다.
지난 4년 동안 이창수의 시선은 극적으로 변화했지만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한결같다. 대상의 껍데기 내면에 꿈틀대는 본질에 관한 관심이 그것이다. 이창수는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을 통해 외피 아래 숨은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섬진강 변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잊는 것이었다. 대상의 본연을 표출하는 일이 곧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식의 한계를 떨쳐내야 비로소 상대의 외피 안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강물은 어떤가. 자연에서 가장 온전히 빛의 반사와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매체가 강물의 표면이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빛은 미묘하게 흘러가고 찬란하게 부서진다. 빛의 피부를 입은 물의 근육은 하나의 몸으로 숨 쉬고 움직이는 생명이 된다.
숨 쉬는 물의 근육을 포착한 대표적 작품이 ‘쉼 없는 시간’이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결의 움직임을 근거리에서 포착한 것으로, 물결의 풍부한 톤을 탁월하게 담아냈다. 세밀한 명암의 구조와 중첩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이창수는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신비와 위엄을 맞닥뜨리며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함을 깨닫는다.
작품 ‘애써 건너가니’ |
‘낯선 관점’을 획득한 이창수는 카메라를 매개체로 하여 대상을 기록한다. 기기의 사양, 날씨와 광량 등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한 ‘우연성’이 작품에 담기며 작가의 주관적 판단은 상대적으로 옅어진다. 이창수는 이 우연의 이면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대상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표출하려는 노력이다. 지난해 촬영한 작품 ‘애써 건너가니’에 담긴 물의 움직임은 밤하늘 별 무리를 떠올리게 한다. 아래로부터 위로 휘몰아치는 폭발적인 에너지도 느껴진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이창수는 대상의 기운과 정체성을 한장의 사진 안에서 극대화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찾아낸다. 그는 순간적으로 흩어지는 미세한 물빛의 흐름을 포착해 다채로운 빛무리의 이미지를 얻어냈다. 빛의 무리는 끊임없이 춤추며 도시의 야경이 되거나, 빛의 폭포가 되거나, 불타는 유성과 찬란한 은하수가 되어 화면을 수놓는다. 미시적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 대상 내면의 드넓은 우주를 건져낸 결과물이다.
모든 작품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는 한 번에 다수의 이미지를 찍은 후 화면의 톤과 균형 등을 고려해 사진을 선별한다. 사진을 뒤틀거나 변형하는 등 과도한 수정을 지양하고 푸른색, 노란색, 흑백의 세 카테고리로 이미지를 분류해 색감을 조정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보존성이 좋고 색상 표현에 탁월한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기법으로 인화했다. 매 작품의 우주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온다.
‘이 그 빛’은 2008년 ‘움직이는 산, 지리(智異)’와 2009년 ‘숨을 듣다’(2009)에 이어 작가가 세 번째로 지리산을 주제로 여는 개인전이다. 일간지와 월간지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이창수는 2000년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겨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사는 지리산 섬진강을 주제로 세 번의 전시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 초심에 마침표를 찍는 이번 전시는 다음 달 12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