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낮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앞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주민들. |
서울 낮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으며 114년만의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1일 낮. 서울역 옆 용산구 동자동 언덕 위 그늘에는 쪽방촌 노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쪽방촌 방안의 더위를 피해 삼삼오오 그늘에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인근 쉼터에서 만난 쪽방촌 주민 유모(67)씨는 “더위를 피해 (오전) 5시에 있어나고 있다”며 “평소 (오후) 9시에 잠들었는데 요즘엔 밤도 너무 더워 11시가 돼서야 잠이 든다”고 말했다.
1일 낮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한 주민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는 소방관을 지켜보고 있다. |
주인이 더위를 피해 떠나간 쪽방촌 안은 조용했다. 일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문을 열고 힘겹게 누워있을 뿐이었다. 한 방안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방에는 선풍기 하나, 텔레비전 하나, 소형 냉장고 하나, 각종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서울 한낮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올랐던 1일 낮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방안의 온도도 36.5도에 달했다. |
서울역에 위치한 대부분의 쪽방촌 건물은 한층에 6~7가구씩 총 5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작은 건물에 1평 남짓의 방이 줄지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등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서울역에만 500여명이 쪽방촌 생활을 하고 있다. 남대문지역상담센터의 최진형 사회복지사는 “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일용직, 노숙인들이 쪽방촌에 거주한다”며 “이곳 나름의 마을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다들 쉽게 떠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역 쪽방촌 거주자 정용태(57)씨가 1일 낮 좁은 방 안에서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기초수급자다. 유씨는 10년 전 아들 둘을 지병으로 잃고 부인과 이혼해 혼자가 됐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한동안 술을 마시며 날을 지새웠고 결국 간과 폐에 병을 얻어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은 탓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쉼터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초수급자 강모(60)씨도 고시원에 살다가 주인에게 쫓겨나 쪽방촌에 왔다. 강씨도 더위를 피해 지하도나 에어컨으로 피신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이들은 “쪽방촌 삶이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3년 2개월째 쪽방촌 생활을 하고 있는 정용태(57)씨는 “예전엔 몸이 좋았는데 쪽방촌에 오고 나서 몸이 망가졌다”며 “기초수급자가 되는 순간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결핵으로 기초수급자가 된 정씨는 “지원을 받아 밥을 먹고 TV만 보고 누워있다 보니 한 달 몇 끼나 먹었는지 기억조차나지 않는다”며 “결국 술, 담배만 하고 무료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일하면 수급이 끊기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쪽방촌에서 3년을 보낸 강모(64)씨도 “쪽방촌은 창문이 없어 바람조차 안 통한다”며 “박원순 시장이 옥탑방에 산다는데 옥탑방은 여기에 비하면 호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덥고 환기조차 되지 않아 이곳은 잘 곳이 못 된다”며 “이번 여름이 오고 살이 6kg나 빠졌다”고 한숨 쉬었다.
1일 낮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한 주민이 무더위에 밖으로 나와 부채질을 하고 있다. |
정부와 민간단체들도 무더위 속 건강을 위협받는 쪽방촌 거주자들을 위해 총력지원에 나섰다.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는 이날 점심 쪽방촌 거주자들을 위해 삼계탕 400인분을 준비했다. 폭염으로 약해진 거주자들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남대문쪽방 상담소 정수현 소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폭염도 재난 중 하나”라며 “쿨매트, 생수 보급, 쉼터 제공 등 폭염 속 쪽방촌 거주자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구청직원과 구세군 소속 간호사들은 주기적으로 요보호자들을 찾아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여름철 쪽방촌 결핵 관리도 비상이다. 가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위생관리가 되지 않는 환경과 폭염으로 거주자들의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다. 실제 서울역 쪽방촌에서 결핵 치료 환자는 58명에 달했다. 쪽방촌 거주자 500여명 중 10%가량이 결핵 치료 중인 것. 중구보건소 엄재철 복약관리사는 “쪽방촌은 공기가 안 좋고 영양관리도 안 돼 결핵에 취약하다”며 “그렇다 보니 치료 후에도 결국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보건소는 1년에 2회 쪽방촌 거주자를 대상으로 결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중부소방서도 이날 서울역 쪽방촌 인근에 응급진료소를 설치하고 도로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수차를 동원하는 등 쪽방촌 지원에 나섰다.
글=안승진, 사진=한윤종·이우주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