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폭염 등 각종 재난과 시리아와 지중해에서 숨지고 있는 난민들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은 자연스럽게 우리 감정을 자극해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공감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관심이 집중되다가도 어느 순간 무감각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라고 부른다. 타인의 상황에 시들해지는 이런 상태는 24시간 자극적인 뉴스를 소비하는 현대인에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공감 피로가 우리 정신과 몸에 주는 변화를 이해하고 대처 방안을 살피는 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일(현지시간) 시인이자 수필가 엘리사 가버트는 영국 가디언에 ‘24시간 뉴스가 나오는 시대에 공감 피로는 필연적인가’라는 기고문을 통해 공감 피로의 기원과 실체를 추적했다.
가버트는 우선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를 인용해 공감 피로를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감정은 물론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라고 정의한다. 공감 피로를 겪으면 생기는 증상으로 ‘객관’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쉽게 놀라며, 신체적으로 피로감이나 불안감이 느끼며 정서적으로 무기력함이나 우울감이 동반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가버트에 따르면 공감 피로는 수 백 년 전부터 발견됐던 현상이다. 공감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을 때부터 공감 피로도 같이 진단됐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사무엘 모인은 “도덕이 인간의 공감 능력으로부터 생긴다고 여겼던 18세기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헌신적으로 공감한 사람들이 오히려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도달한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고 밝혔다. 공감 피로라는 단어는 1992년 역사학자 칼라 조인슨이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살리려는 노력에도 결국 실패하자 무기력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을 목격해 기사화하면서 사용됐다.
현대에 와서 공감 능력은 피로감이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인간관계 형성은 물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정서로 자리매김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우리 마음이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도하게 공감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공감 피로라는 개념을 잘 모른 채 상처받고 있는 것이라고 가버트는 지적했다. 공감 피로를 해소하지 않았을 때 부작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고 가버트는 전했다. 공감 피로를 치료하지 않은 간병인은 의료 시술에서 실수를 많이 했고, 가족은 물론 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졌다. 가버트는 공감 피로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신체적 회복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명상과 휴식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최소 2명이 공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 제시된다고 설명했다.
가버트는 불치병을 겪고 있는 남편을 수년 전부터 돌보면서 공감 피로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이나 불안감을 호소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의 남편은 청소기 소리, 비행기 엔진 소리 등 다양한 이명 현상을 호소하다가도 어느 날에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남편이 40이 채 되지 않던 때였다. 이때부터 가버트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남편을 직장까지 데려다주고 의사를 부르는 등 비서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는 “내 시간에 갑자기 이런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 싫었고, 쉽게 짜증을 내는 내 자신이 더 미웠다”며 “‘스트레스’란 말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가버트는 24시간 미디어에 노출되는 우리들이 간접적으로 공감 피로를 항상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하게 끔직한 사건과 이미지에 대한 노출이 우리 마음을 닫게 한다는 것이다. ‘공감 피로 ; 미디어는 어떻게 질병과 기아, 전쟁과 죽음을 파는가’의 저자 수전 몰러는 책에서 “미디어는 여러 공포를 건너다니며 공감 피로를 폭발시킨다”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전쟁과 기아를 끊임없이 보도하면서 어느 순간 지루해지는 시점이 오는 데 그때 미디어는 직전 기사보다 더 자극적인 보도를 통해 이를 해결한다고 몰러는 지적한다. 공감 능력을 가진 독자들은 해결이 쉽지 않은 기아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데 자신을 사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느낄 때 공감 피로를 겪는다고 가버트는 전했다.
미디어의 노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 어떻게 공감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공감이 가져오는 피로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가버트는 공감 피로를 느끼는 명상을 하는 등 간병인들이 받는 치유법도 의미가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각종 뉴스가 생산하는 모든 이슈에 반응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불필요하게 모든 사안에 분노를 가지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주변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는 책 ‘감정이입에 맞서서’를 쓴 심리학자 폴 블룸을 인용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모든 사람을 돕겠다는 실현 가능하지 않은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버트는 아울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주변 사람을 믿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고민을 토로한 독자처럼 트럼프의 정책에 항의하며 지역구 의원들에게 민원을 넣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 피로를 느꼈다고 말했다. 불치병을 겪고 있는 남편과 함께 이런 감정이 겹치면서 절망하고 있을 때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민단체 활동가가 가버트에게 “그만 절망해라.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가버트는 기억했다. 몇 달 뒤 그 활동가는 가버트에게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좋은 활동을 하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당신에게는 글을 쓰는 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후 가버트는 주변 사람들이 올리는 시위 사진을 보며 자신을 대체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싸우기 너무 지쳤을 때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