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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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현장+] '한 푼이라도 더' 알바에 찌든 청춘…"휴가요? 불안해서 쉴 틈도 없어요"

쉴 틈 없는 대학생들의 방학 / 여행은 꿈도 못 꿔 / 학자금·생활비 벌기에도 빠듯해 / 스펙 쌓는 것도 힘들어 / 여름휴가 가본 적이 없어 / 빚으로 사는 20살의 청춘/ 불안한 취업 시장…수천만 원의 학자금 갚기도 막막

4일 서울 용산구 한 배달종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배달종사자들은 오늘도 더위와 싸우고 있다.

“토익 학원 다니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럴 여유가 없어요. 월세에 생활비 벌기도 빠듯해요.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불안하기만 해요. 당장 알바라도 한 번이라도 더 뛰어야 다음 달 생활을 할 수 있어요.”

군대를 다녀온 대학교 3학년 이모(24)씨는 힘든 부모님을 생각해 생활비는 자신이 마련하겠다고 했다. 제대 이후 알바부터 시작한 이 씨는 생각보다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몸은 고단하고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기에 빠듯한 시간 쪼깨고 또 쪼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씨는 “집안 형편이 그나마 나은 친구들은 ‘기본 스펙’을 쌓아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준비 하고 싶지만, 현실을 늘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복잡한 생각도 들고, 어디 의지할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대학생은 방학이면 더 바쁜 시간을 보낸다. 스펙 쌓기부터 아르바이트까지 찌든 삶에 치이며 사는 것이 현실 됐다. 그렇다보니 여행은 꿈도 못 꾼다. 취업 준비에만 '올인' 할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하다.

대학생 이모(25)씨는 방학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개인과외를 잡은 친구들은 부럽기만 하다 돈이 될 만한 아르바이트는 안 해본 일이 없다. 가정 형편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다. 해마다 달라지는 등록금과 생활비에 하루라도 알바에 손을 놓을 수 없다. 취업 준비에 집중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괴감마저 든다.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500만원이 넘는 등록금과 월세 45만원을 마련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생활비까지 감당하려면  아르바이트에 악착같이 매달려야 한다. 대학가 평균 월세가 35만~60만원, 고시텔 등도 20만~45만원 정도가 된다. 이씨의 경우 월세를 포함해 약 55만~70만원 정도가 지출된다. 월 지출 되는 밥값 45만원 정도다.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가고 싶지만 당장 닥쳐올 등록금을 생각하면 꿈일 뿐 현실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 처럼 한 학기당 500만원을 아르바이트만으로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생들에게 방학은 학점을 제외한 나머지 스펙을 쌓아야 하는 시기다. 학기 중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낸다. 대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현실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로 취업 준비, 아르바이트, 외국어 공부 순으로 꼽았다. 아르바이트 문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음식 프렌차이즈, 식당가, 등에서도 무인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단순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도 구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 됐다. 버티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해야만 한다. 대학생들은 잠시 쉴 틈도 없다.

취업 준비뿐만 아니라 가장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향 집에 잘 내려가지 않는다.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1)씨는 “방학하자 마자 잠시 집에 내려갔다가 왔어요. 오래 있고 싶어도 친구들이 스펙을 쌓는 것을 볼 때 불안해서 일찍 올라왔죠. 부모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현실은 좀 거리가 멀어요. 그렇다고 실망 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친구 이(21)씨는 “생활비를 보내주시고 계시는데, 아버지 월급으로는 부모님 생활도 빠듯해요. 용돈 받기가 미안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계속 찾아서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용산구 한 분식점. 기본 김밥 2,500원과 일반 라면 3,500원. 김밥은 지난해에만 무려 7.8%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와 비교하면 4배나 높은 수준. 김밥, 소주, 라면, 짬뽕 등 '서민' 물가가 치솟고 있다.

◆빚은 쌓이고, 취업은 힘들고

청년들의 채무 증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대학에 들어간 상당수 청년은 20살부터 빚이라는 멍에를 쓰고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고등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빚의 굴레’에 갇힌 시대가 됐다.

정부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2.25%(2017년 2학기 기준) 금리의 학자금대출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제도는 취업 후 일정한 기준 소득(연 1856만원) 이상이 되면 상환을 시작하는 취업 후 상환학자금(전 든든학자금),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거치기간 후 원금을 상환하는 일반상환학자금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런 학자금대출로 당장 학비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16년 학자금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약 66만명으로 집계됐다. 대출금액은 1조9128억으로 1인당 연평균 29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액으로는 소액이지만 대학생에게는 빚이라는 멍에 안고 사회에 진출한다.

2016년 국세청에 따르면 취업후학자금대출 체납건은 모두 8999건, 체납액은 90억9400만원으로 전년(7912건, 65억5900만원)보다 약 1000건, 25억원이 늘었다. 2016년 일반학자금대출 연체자는 3만4467명이며 연체잔액은 2031억원에 달한다.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유의자도 지난해 1만7773명으로 집계됐다.

2학기를 앞두고 휴학한 대학교 4학년 최모(27)씨도 취업이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것. 최씨는 “1~2학년 때 생각과 지금은 확연히 틀리다. 그동안은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졸업한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면 힘든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고 토로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