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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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그녀들은 위안부지만 또한 인간이다

2년 전 ‘한 명’ 이어 ‘흐르는 편지’ 출간 / 올 광복절 앞두고 증언소설 2편도 내놔 / 그동안 고통스러운 이야기만 끌어냈다 / 그들도 울음 뒤에 간직한 삶이 있는데 / 존재의 고통을 연민으로 나누어 보니 / 그녀와 황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쟁은 인권을 말살한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후방에 있는 약한 존재들마저 여지없이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일본 제국주의가 광기어린 군국주의로 전쟁을 벌였을 때는 아예 여성들을 전장 한복판으로 끌어내 군인들 소모품으로 내몰았다. 참담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들은 여전히 피해 생존자들 앞에서 변명과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수록 참상을 제대로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을 세우는 일은 지속돼야 한다.

소설가 김숨(44)이 2년 전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 명’을 펴낸 데 이어 이번에는 당시 전쟁터 위안소를 배경으로 소녀들이 겪은 참상을 직접 그린 소설 ‘흐르는 편지’(현대문학)를 내놓았다. 다음주 광복절 전날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집필한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도 잇달아 펴낸다.

“위안부 이야기는 너무 뻔한 것처럼 돼버렸잖아요? 우리는 너무 숲만 보는 거 같아요. 숲보다도 나무, 딱 한 분의 증언만이라도 집중해서 들어보면 위안부에 대한 이해가 빠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어떻게 동원됐고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살아 돌아왔으며,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위안부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기도 하거든요.”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김숨은 작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했다. 그가 위안부 소설을 2년 전 처음 펴낸 것은 자신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중편 ‘뿌리 이야기’에 스치듯 등장시켰던 위안부 피해자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공부해 펴낸 장편이 ‘한 명’이었다. 갑자기 한 달에 두세 명씩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망하던 해, 이러다가는 곧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기존 증언들을 찾아 소설에 녹여내 썼지만 체화가 안 됐다는 아쉬움이 컸다.

‘한 명’을 쓰고 나서도 심포지엄도 찾아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그녀 세대가 머리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다. 어느 정도 체화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흐르는 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열다섯 살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와 일제강점기 군용 콘돔인 ‘삿쿠’를 강물에 씻으면서 물결 위에 검지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김숨이 들여다본 ‘나무’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구호와 분노로서의 위안부 문제가 아닌 인간의 고통을 만나게 된다.

“결국엔 제가 위안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 쓰고 싶었던 거 같아요. 피해자나 생존자라는 수식어를 걷어내고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돼요. 우리는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들만 끌어내는 데 집중한 것 같아요. 고통만 간직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운 것도, 좋아하는 색깔도, 외로움도 모두 있을 텐데…. 길원옥 할머니가 어느 날 인터뷰를 끝내고 가려 할 때 가지 말라고, 내 등에 붙어 자고 가라고 했을 때는 울컥했어요.”

‘정대협’ 관계자의 부탁으로 위안부 쉼터에서 기거하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올 초부터 6개월 동안 인터뷰한 뒤 증언소설을 펴내는 김숨은 피해 할머니들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려고 애썼다고 했다. 영상에서는 꼿꼿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김복동(92) 할머니에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홀로 외롭지 않으냐고 물어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다가도 김숨의 거듭된 질문에 끝내 할머니는 울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질문을 하면 외롭지 않다고 예의 꼿꼿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노래를 잘 불러 지난해 음반까지 펴낸 길원옥(90) 할머니는 초기 치매증세가 있지만 김숨과는 노래를 부르듯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김숨은 길원옥 증언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작가의 말에 ‘보름달이 뜬 밤, 영혼과 영혼이 야생의 들판에서 만나 이중창을 부르는 것 같은 황홀함을 선물해 주었다’고 적었다.

울산에서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는 김숨을 낳고 유년기에 중동 건설 노동자로 떠났다. 철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부재했다. 어머니는 2남1녀를 데리고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유리창이 바람에 흔들리면 함께 흔들렸다. 성장기에 특별히 문학에 뜻을 두진 않았다. 고교시절 문예반에서 시를 습작했을 따름이다. 대학에서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년 남짓 장애우들 복지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쓰던 시가 길어져 처음으로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소설가의 길로 나섰다. 
위안부 소설을 잇달아 펴낸 김숨. 그는 “우리는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질문만 한 게 아닌가 싶다”면서 “위안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김숨은 대전일보 신춘문예(1997)와 문학동네 신인상(1998)으로 문단에 나온 뒤 첫 장편 ‘백치들’에는 사막의 노동에서 돌아와 백치가 돼버린 아버지와 동류의 무기력한 사내들을, 두 번째 장편 ‘철’에는 쇳가루가 날리는 그로테스크한 조선소 동네에서 벌어지는 붉은 녹 같은 삶의 만화경을 담아냈다. 잇따라 펴낸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도 여전히 어둡고 힘든 삶을 사는 군상이 등장하지만 작가 연륜이 깊어가면서 전작들에 비해 속 깊은 곳에 진을 치는 막막한 슬픔이 보다 따뜻해진다.

“연민이 저를 힘들게 해요. 다른 이들보다 더 절절하게 느낀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연민을 일으키는 존재들에게 제가 많이 취약한 것 같아요. 어떤 인간이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연민하게 되는 거 같아요. 누구나 그 사람의 역사가 있잖아요? 어머니나 아버지, 그분들이 자라온 환경을 보면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항상 그런 건 아니겠지만 소설을 쓸 때 좀 더 연민의 시선이 강하게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위안부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이야기를 다룬 ‘L의 운동화’도 펴냈다. 개인의 고통에서 나아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소설의 향배가 바뀐 것일까. 김숨은 “특별히 의도했던 건 전혀 아닌데 시선을 끄는 이야기들을 따라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런 소설들을 쓰면서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시야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번 증언소설까지 합치면 장편만 열세 권째 펴내는 김숨은 쉼 없이 쓰는 존재로 살아왔다. 그녀는 “쓰는 일이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밥 먹는 일과 같다”면서 “그것이 저를 저답게 살게 해주는 행위”라고 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무언가를 쓰고 있더라고 했다. 어린 시절 놀이를 할 때부터 자신은 경쟁력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싸워서 질 거라는 걸 잘 아니까 이기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만의 이기는 방법은 쓰기를 통해 존재들의 고통을 연민으로 나누는 일일까. 열다섯 살 위안부 소녀가 흐르는 물에 검지로 쓴 마지막 편지.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