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2)씨는 매주 로또를 산다. 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그도 잘 안다. 다만 당첨을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펼 때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10억, 20억, 30억…’. 당첨 시 금액에 따른 계획도 일찌감치 정해 놨다. 5000원으로 시작한 구매액은 차츰 늘어 한 주 5만원 넘게 쓴 적도 있다. 그는 “월급이 190만원 정도여서 로또를 사는 게 조금 부담이 되지만 삶에 이런 작은 행복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머쓱해했다.
14일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보니 ‘#소확행’을 태그한 게시물이 36만건이나 됐다. 지난 4월 5만개 남짓이던 것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늘었다. 주로 잘 꾸며진 카페, 정갈한 음식 사진, 커피잔, 맥주캔, 여행지 사진 등에 태그가 걸려 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확행이란 단어가 국내에 알려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2018년 키워드’로 꼽으면서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짧은 시간에 청년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으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확행에 대해 공감한다’는 응답이 75.1%에 달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소확행이란 단어를 접하고 예전에 잘 깨닫지 못한 일상의 기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소확행, 행복을 주제로 한 에세이들은 페미니즘 서적과 더불어 상반기 출판업계 키워드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왜 지금 소확행일까. 전문가들은 미래보다는 현재,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미영 서울대 교수(소비자학)는 “소확행은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삶의 방식”이라며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최근 10년간 쭉 이어져 온 현실지향적 태도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이어 “소확행이 확산하는 데에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너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줬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에서는 청년들이 ‘작은 행복’에 관심을 쏟는 것은 부모 세대에서 행복의 필수조건으로 여기던 결혼이나 취업 같은 것들이 멀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소확행은 소위 출세나 성공에서 오는 행복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나타난 것”이며 “벌어들이는 경제 규모가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등장한 일종의 대안적 성격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작은 행복이라도 얻으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이 암담하기 그지없어서다. 올 들어 청년실업률은 매달 10∼11%를 오가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6월 121이었던 ‘취업기회전망지수(CSI)’는 지난달 87로 급락했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6개월 뒤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것으로 여기는 이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다.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절망감도 크다. 통계청의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3년 43.7%였던 것이 지난해 54.5%로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일부 청년은 미래에 막연히 낙관적 태도를 보이는 이른바 ‘행복회로’를 돌리며 사행성 도박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얼쩡거리는 등 ‘한탕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단기간에 소확행이 확산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지호 경북대 교수(심리학)는 “버는 돈이 적은 청년들의 소비에 대해 소확행이 일종의 합리화 기제를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며 “‘내일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삶의 태도는 결국 내일의 자원까지 현재에 끌어다 쓰겠다는 것인데 때로는 미래를 위한 인내와 절제가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역대급 취업난 등 우울한 현실이 계속되면서 청년들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겪더라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조그만 신호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권고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고 진료를 받는 걸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우울증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13년 59만1148명이던 우울증 환자 수는 지난해 68만169명으로 15%가량 늘었다. 특히 20대 청년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2013년 5만948명이던 20대 환자 수가 지난해 7만6246명으로 절반가량(49.6%) 늘었다. 같은 기간 30대와 40대가 각각 13%, 6.2% 정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공황장애를 겪는 20대도 2012년 8024명에서 2016년 1만3238명에 이어 지난해 1만6580명으로 크게 늘었다.
홍진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20대들은 영양학적 측면이나 경제적 여건에서 역사상 가장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라면서도 “대학과 사회에서 자신의 기대와는 너무 다른 현실과 부딪힌 것이 우울증이 대폭 늘어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홍 소장은 이어 “2016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서도 18∼29세 청년들의 우울증이 증가했는데, 특히 미혼, 미취업, 월 200만원 미만 소득자에서 발현 비율이 높았다”며 “취업난, 청년실업,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서 중하층으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등이 원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 우울증은 보통 조기 치료 시 완치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청년기 우울증은 단순한 사회적응 문제로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문제나 취업에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홍 소장은 “우울증이 발병하면 대개 식욕저하나 불면 같은 신호가 온다”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등 적극적 치료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우울증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13년 59만1148명이던 우울증 환자 수는 지난해 68만169명으로 15%가량 늘었다. 특히 20대 청년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2013년 5만948명이던 20대 환자 수가 지난해 7만6246명으로 절반가량(49.6%) 늘었다. 같은 기간 30대와 40대가 각각 13%, 6.2% 정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공황장애를 겪는 20대도 2012년 8024명에서 2016년 1만3238명에 이어 지난해 1만6580명으로 크게 늘었다.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 우울증은 보통 조기 치료 시 완치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청년기 우울증은 단순한 사회적응 문제로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문제나 취업에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홍 소장은 “우울증이 발병하면 대개 식욕저하나 불면 같은 신호가 온다”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등 적극적 치료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