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렸던 2002한일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오른쪽)의 돌파를 포르투갈 수비형 미드필더 파울루 벤투가 슬라이딩으로 제지하려는 순간. 벤투는 16년이 흐른 지금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뽑혔다. |
축구협회는 2018년 8월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까지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 인물로 파울루 벤투(49)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영입했다.
한국 A대표팀 8번째 외국인 감독인 벤투 감독은 2002월드컵 때 포르투갈 대표로 나와 박지성과 매치업을 펼쳤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A매치 35경기에 출전했으며 포르투갈 대표팀, 프로 명문 스포르팅에서 상당한 지도력을 과시한 바 있다.
벤투 감독 부임을 계기로 한국대표팀을 거쳐간 외국인 지도자를 살펴 봤다.
① 사상 첫 외국인 지도자는 1971년 3월, 영국출신 그레이엄 애덤스 코치
우리나라 대표팀에 온 첫 외국인 지도자는 영국출신 그레이엄 애덤스(1933년생)다.
애덤스 코치는 1972뮌헨올림픽 진출을 위해 축구협회가 큰 맘 먹고 모셔온 재목이다.
1971년 3월 한국에 온 애덤스 코치는 30대 대표팀 감독인 한홍기(1970.2~1971.10)를 보필했지만 그해 9월 올림픽 진출이 좌절되자 협회는 애덤스를 전국 순회코치로 보내 선진 축구를 전수토록 했다.
애덤스는 1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한국을 떠나 캐나다 몬트리얼올림픽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②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은 크라머, 최고의 축구 이론가였던 크라머 할아버지
1991년 크라머 총감독(왼쪽)의 말을 김호곤 코치(왼쪽에서 두번째), 김삼락 감독(오른쪽)이 경청하고 있다. 독일축구계 존경을 받은 크라머 감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려고 무척 노력했다. |
우리 대표팀의 사실상 첫 외국인 감독은 독일출신 데트마어 크라머(1925~2015).
크라머는 한국축구대표팀 총감독 자격으로 1991년 1월 한국에 와 주로 올림픽대표팀(23세이아)을 지도했다.
28년만에 올림픽진출이라는 기적을 연출했지만 국내 축구인들과 갈등끝에 올림픽을 앞둔 1992년 3월 독일로 가버렸다.
1980년대 초반 레버쿠젠 감독으로 차범근을 지도했던 크라머는 작은 체구에 인자한 표정으로 선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려 무척 애를 썼다.
③ 공식 A대표 외국인 감독 1호 비쇼베츠
국가대표 A팀 공식 외국인 감독은 우크라이나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
1994아시안게임과 1996올림픽, 멀게는 1998프랑스월드컵을 위해 외국인 감독 필요성을 느낀 축구협회는 1988서울올림픽서 소련(구 소련)을 우승시킨 비쇼베츠에게 눈길을 돌려 모셔오는데 성공했다.
비쇼베츠는 특유의 과학적 훈련방법으로 대표팀 경기를 시스템화 했다.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전력을 끌어 올렸지만 경기를 비교적 잘 하고도 운이 따르지 않아 1994아시안게임 4위, 1996올림픽 8강진출 실패하는 등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그 역시 크라머 감독처럼 국내 축구인들과 관계가 그닥 좋지 못했다.
④ 국가적 지원받은 히딩크, 모든 전권을 휘두른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
2002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의 유명한 어퍼컷 세리머니. 히딩크 재단 제공 |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거스 히딩키(네덜란드) 감독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축구계 뿐 아니라 거국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았으며 전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철저한 계산아래 휴가도 마음대로, 국내 축구인들의 조언도 모른척 했다.
2002월드컵을 위해 축구계는 모든 것을 희생, 히딩크 요구대로 움직였다. 선수차출 불만, 시기 불만도 자기들끼리 했을 뿐 감히 히딩크앞에선 어디~.
히딩크는 떠오르는 태양 이동국도 내쳤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처럼 1년 반가량을 무한 지원속에 무한 권력을 행사한 감독이 있을까,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를 찾아봐도 글쎄다.
⑤ 코엘류, 하필이면 히딩크 후임
히딩크가 떠난 자리를 물려받은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는 어찌보면 참 복이 없는 사람이다.
코엘류는 포르투갈을 UEFA200유로 4강으로 올려 놓는 등 나름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히딩크로 인해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한국이기에 '아주 잘해도 본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당에 2003년 아시안컵 예선 2차전에서 베트남에 0-1패, 오만에 1-3패한데다 2003년 불가리아와의 친선경기서도 0-1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자 여론이 들끓었다.
2004년 3월 31일 약체 몰디브와의 2006월드컵 원정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히딩크만큼 지원받지 못했다"라는 뼈있는 말을 남기고 보따리를 싸야했다.
⑥ 항상 뒷북 친 본프레레
2002월드컵 4강 신화 압박감에 축구협회는 또 외국인 감독을 물색했다.
이번에 데려온 이는 나이지리아를 1996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승시킨 조 본프레레(네덜란드).
결론적으로 말하면 본프레레 감독은 취임전부터 잡음을 낳기 시작, 갈 때까지 갈등만 빚고 말았다.
희한한 점은 본프레레 감독이 여러나라 대표팀 사령탑을 전전하면서 자기 실력을 보여준 적 없다는 것이다.
1996올림픽 우승도 올림픽 직전 맡아 금메달을 차지, 앞 사람이 다 만들어 놓은 밥을 먹었다는 비아양을 들었다.
1997년 카타르 대표팀에서 쫒겨난 뒤, 2001년 나이지리아 감독에서 물러난 뒤 각각 카타르와 나이지리아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본프레레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만든 팀"이라며 뒷불을 쳤다.
본프레레는 기록면에서 그럭저럭 승이 많았지만 2005년 동아시안컵 2무1패로 꼴찌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06독일월드컵 예선서 0-1로 지자 떠밀려 한국을 떴다.
⑦ 나폴레옹을 연상시킨 아드보카트, 사상 첫 월드컵 원정 첫승 따냈지만
딕 아드보카트(오른쪽) 감독과 핌 베어벡 (왼쪽) 수석코치. |
엉망이 된 대표팀을 다잡기 위해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 일을 할 재목으로 딕 아드보카트 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 선택됐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나폴레옹을 닮은 듯한 강단있는 표정으로 선수들을 추스려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어 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토고에 2-1승, 사상 첫 월드컵 원정 승리를 기록했다. 하지만 1승 1무 1패로 아깝게 16강 진출에 실패, 그대로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⑧ 형님 베어벡, 성적에 당할 재간이
히딩크,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코치 경력을 쌓은 핌 베어벡(네덜란드)는 아드보카트가 버린 지휘봉을 찾아 손에 들었다.
형님 리더쉽 등 선수들과 친밀했고 한국 축구를 3백에서 4백으로 시스템 변화를 완성시켰다.
그런 그도 아시안컵에서 3위에 그친데다 이상하리만큼 득점이 터지지 않는 책임을 뒤집어 쓴 채 한국과 이별했다.
⑨ 7년만에 구한 외국인 감독 슈틸리케, 월드컵 예선 탈락 직전 짤려
축구협회는 2010남아공 월드컵부터 국내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명제아래 허정무, 홍명보(2014브라질)감독체제로 팀을 꾸렸다.
기대를 모았던 홍명보 감독이 2014브라질월드컵 16강진출에 실패하자 축구계는 '국내 지도자에게 더 기회를', '외국인 감독을 구해 흔들림 없이 나가야'라는 의견으로 팽팽히 맞섰다.
결국 국내 지도자가 맡으면 잡음이 많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 협회는 외국 감독 스카우트전에 뛰어들어 울리 슈틸리케(독일)을 잡았다.
슈틸리케는 잔잔한 대회(동아시안컵 우승)는 잘 해 냈지만 한국 축구가 먹고 사느냐 마느냐가 달린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이상하게 휘청거려 이란에 지고 이라크에 비긴 뒤 2017년 6월 13일 카타르에 2-3으로 덜미를 잡히면서 그 자신도 함께 넘어졌다.
슈틸리케는 16경기 연속 무패, 10경기 연속 무실점, 승률 69%(39전 27승 5무 7패)로 기록으로는 나무랄데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월드컵 예선서 엉망진창의 경기력을 보여 낙마했다.
물론 슈틸리케는 "축구협회가 제대로 도움을 준 적이 없다"며 책임을 협회에 떠 넘겼다.
사실 그를 보좌할 코치들이 정신없이 들락날락 하는 등 슈틸리케가 화를 낼 법한 일도 있다.
⑩ 벤투, 사실상 코치전원을 자기사람으로· 축구협회 "어디 마음대로~"
17일 축구협회가 고르고 고른 끝에 뽑아 보인 카드는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지낸 벤투.
오는 20일 벤투 감독은 자신을 보좌할 코치진 4명(수석, 수비, GK, 피지컬)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다. 외국지도자 5명이 한국대표팀 벤치에 한꺼번에 앉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축구협회가 아예 작정하고 "당신 마음대로 해 보셔"라며 밀어준 것이다. 히딩크 처럼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못할 바에는 코치진이라도 마음대로 하라면 전부 갖다 받쳤다.
계약기간 4년간 150억원 가까운 비용이 벤투 사단밑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등 벤투는 히딩크 이후 17년만에 총력지원을 받는 조금 복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