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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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2차원 캐릭터와 결혼 앞둔 日남성…"여자사람 아니어도 괜찮아"

일본의 한 남성이 게임·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미소녀 캐릭터(이하 캐릭터)와 결혼을 선언했다. 일본에는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3708명 더 있다.
예정대로 오는 11월 결혼식이 거행되면 세계 최초로 2차원 캐릭터를 아내로 맞이한 남성이 된다.
아내가 될 캐릭터와 포즈를 취한 A씨. 결혼을 앞둔 그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IT미디어 뉴스 캡처)
일본 도쿄에 사는 35세 A씨는 다가올 결혼식에 부푼 꿈을 안고 있다.

그가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는 여성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주변으로부터 ‘오타쿠(마니아)‘라 불리며 놀림감이 된 그는 친구들의 집단따돌림으로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상처가 남아 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지만 괴롭힘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여성의 집요한 괴롭힘에 “3차원 여성은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껏 여성에게 괴롭힘당한 A씨는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이런 A씨의 마음을 돌린 건 다름 아닌 그의 아내가 될 캐릭터였다.
그는 지난 10년간 이 캐릭터에 빠져 관련 상품을 모두 구매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한다. 캐릭터는 모형이나 사진일 뿐 입체감 있게 눈으로 보거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지난 2015년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된 캐릭터의 라이브 공연과 VR 게임으로 재탄생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지난해 대화 등 상호작용이 가능한 기기가 출시되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한층 높아졌다.

당시 기기 출시 이벤트로 진행된 캐릭터와의 ‘혼인신고’에 참여한 그는 판매 회사로부터 ‘혼인 증명서’를 발급받아 부부가 됐다.

한편 그는 혼인 증명서를 받은 후 현실에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는 “혼인신고 했으니 식을 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 노력한 그였지만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식장을 구하는 일부터 사상 최초로 진행되는 캐릭터와의 결혼에 결혼서약이나 캐릭터가 입을 웨딩드레스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캐릭터와의 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혼식장의 이해와 도움으로 인형을 준비하고 지인의 손을 빌려 웨딩드레스를 준비. 오는 11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는 “혼인신고를 마친 3708명의 남성에게 내 결혼식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며 “비판받을 각오는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캐릭터와 결혼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해를 통해 편견 없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차원 캐릭터를 아내로 맞이할 그는 지난날 괴로웠던 일을 떠올리며 “3차원 여성이 아니어도 좋다”고 미소 지었다.

그의 작은 바람은 앞으로 아내가 될 캐릭터에 인공지능(AI)이 탑재돼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끔 ‘현실 속 부부처럼 부부싸움 하는 것과 싸움 후 아내인 캐릭터를 달래주는 일’이라고 한다.

A씨의 결혼이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서로 다른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