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기는 힘들다. “그냥 한 점 두 점 모으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냥 매력에 푹 빠져서요” 등 거창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전시품. |
독특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전문가가 된 ‘덕후’들의 모습은 남들과 다르기에 관심을 끈다. 오랜 세월 이어온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다른 지역보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었던 강원 영월이다.
영월의 독특한 지역색과 ‘덕후’들의 삶의 모습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자신만의 색깔이 누구보다 강한 이들은 동강과 서강이 감싸 흐르는 영월만의 독특한 풍광에 흠뻑 매료됐을 듯싶다. 강이라면 이제 인간의 손에 의해 정비돼 넓고 쭉 뻗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고, 유속이 느린 곳에 모래톱이 생기고, 빠른 곳은 파여 절벽을 이뤄야 하지만 그런 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동강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 색깔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풍광을 품은 영월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 온 이들의 모습이 덧입혀지고 있다. 자연의 비경뿐 아니라 꽁꽁 싸매놨던 ‘덕후’ 인생의 일부를 영월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동강을 찾은 이들이 신나게 래프팅을 즐기고 있다. |
동강을 빼놓고 영월에 대해 얘기하기는 어렵다. 동강 하면 영월, 영월 하면 동강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맘때 친구, 동료와 래프팅을 하러 떠난 이들이라면 물에 빠져 맑은 동강 물맛을 한번쯤 느껴봤을 그곳이다. 래프팅을 하며 풍경을 즐기고, 빠른 유속에 배를 맡긴 채 스릴을 즐기는 강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올라가면 이런 동강의 풍광은 사치로 다가온다. 태백, 평창, 정선, 영월을 거쳐 남한강에 합류돼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흐르는 동강엔 목숨을 건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동강에서 남한강을 거쳐 한강을 통해 가는 물길은 강원도의 물자를 한양으로 가장 빨리 운송할 수 있는 루트였다. 그 중심에 뗏목을 수송했던 ‘떼꾼’들이 있다.
조선이 들어선 뒤 한양에 궁궐을 지으면서 원목 수요가 높아졌고, 강원도 목재가 한양으로 수송됐다. 궁궐 외에 다른 건물들도 지어졌고, 조선말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며 목재가 계속 한양으로 공급됐다. 이때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물길을 따라 보냈다. ‘떼꾼’은 목재를 엮은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강원 영월 동강은 조선시대 떼꾼들이 한양으로 목재를 운송하던 물길이다. 어라연부터 된꼬까리 구간은 동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품고 있다. |
기차가 다니면서 떼꾼들의 얘기는 옛일이 됐다. 지금 동강 상류에 있는 큰 바위 어라연부터 된꼬까리 구간은 동강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래프팅을 하면 어라연을 지나치긴 하지만 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동강의 비경을 보려면 동강 물길을 따라 잣봉을 올라야 한다.
어라연을 좀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반대로 강변을 따라 된꼬까리를 지난 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어라연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이른다. 강원도에서 ‘뼝창’이라 부르는 벼랑 사이로 흐르는 동강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어라연은 엄청난 크기의 상선암과 그 뒤의 중선암과 하선암 등 삼선암을 말한다. 과거 어라사라는 절이 있어서, 물고기가 많아서, 상선암에 이끼가 차면 고기 떼 비늘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와 함께 비운의 왕 단종과 얽힌 얘기도 있다. 단종의 혼백이 떠돌다 어라연에 이르자, 물고기들이 단종의 혼백에 그만 갈 길을 가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이후 단종은 태백산으로 들어갔고, 산신이 됐다는 얘기다.
전국 곳곳에 한반도 지형이 있지만, 영월 서강의 한반도 지형은 우리나라와 형태가 가장 닮은 곳이다. |
어라연 가는 길과 비교하면 한반도 지형은 매우 평탄하다. 주차장에서 내려 10여분 걸으면 전망대에 이른다. 전국 곳곳에 한반도 지형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형태가 가장 닮은 곳이다.
한반도 지형 오른편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북쪽까지 이어져 있다. 서쪽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다. 최근엔 전망대 앞에 나라꽃 무궁화를 심었는데 이맘때 꽃이 활짝 핀다.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에선 한반도 지형의 동해안을 출발해 서해안까지 1㎞ 구간을 갔다오는 뗏목체험을 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필수 코스처럼 들르는 박물관이지만, 국내에선 외면받는 곳이 박물관이다. 영월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외에 개인들이 모은 소장품을 전시하는 사립박물관이 14곳이나 있다. 군에서 운영하는 박물관까지 합치면 20여곳이 넘는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전시된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전시품. |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물품을 수집하던 ‘덕후’들의 보물이 창고에 갇혀있다 영월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전통악기. |
종교미술박물관 조각품 위에 잠자리가 앉아있다. |
조선민화박물관에 전시된 민화. |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전경. |
영월=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