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중 들른 전남 순천 선암사의 팔상전(전남 유형문화재) 안내판 문구 중 일부다. 지난 6월 ‘한국의 산사(山寺)’ 중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선암사. 안내판을 읽으며 ‘이런 건물도 있었구나’라고 이해하기보다 ‘무슨 말인가’ 싶어졌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
“…양식은 세벌대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구(五樑架構)로 되었다.”
문 대통령의 지적 이후 이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문화재청은 개선책을 마련 중이다.
사실 이해조차 힘든 침류각 안내판 같은 문구가 문화재 안내판의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쉬운 안내판을 만들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어느 정도 개선된 게 사실이다. 침류각이 청와대라는 특수한 공간에 있어 손보기가 힘든 사정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문 대통령의 지적이 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선암사 안내판이 아닐까.
독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보물 362호)의 안내판이다.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체에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조형적 특징을 보인다.” ‘날씬하다’는 평가는 ‘듬직하다’, ‘푸근하다’ 등 결이 다른 감상은 ‘잘못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해 일방적이며, 변화를 시도했다고 하는데 변화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어 불친절하다.
문화재 안내판에 대한 반성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쉽고 재밌는 문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화재 주변 시설물 등에 대한 공공디자인 지침’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이창동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나서 쉬운 안내판을 강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지침,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과거에 있었는데도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는 안내판 문구를 작성하는 전문가들의 오래된 습관과 강박, 무신경 때문은 아닐까. 오랜 시간 공부를 하며 전문용어로 가득한 책, 논문 등을 읽고 쓴 그들에게 안내판의 단어나 내용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며, 전문용어의 활용을 격을 갖춘 글쓰기의 기준쯤으로 여긴다고 하면 과한 것일까.
문화재청은 대책 마련에 나서 전반적인 조사, 정비 계획을 밝혔다. 그 과정에 시민자문단을 참여시킨다. 안내판 문구가 문화재의 역사, 가치, 형식 등을 종합해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문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결국엔 들러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시민자문단의 ‘말발’이 세져야 불친절하고 권위적이며 무엇보다 재미없는 안내판이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