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시스템이 장착된 키오스크 등이 무인 점포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젊은 층도 편리하다는 이유로 호응하고 있지만 무인 시대의 불가피한 부산물인 일자리 감소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한 무인편의점을 찾은 고객이 셀프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무인시스템이 점원을 대체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무인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곳은 유통업계다. 편의점의 경우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거나, 낮에는 직원이 근무하고 밤에는 무인점포로 운영되고 있다. 이마트24는 지난해 6월 처음 무인편의점을 선보인 후 8곳을 시범 운영 중이다. ‘Self Store(셀프 스토어)’ 간판을 달고 있는 서울조선호텔점은 문 옆 벽에 설치된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인식시키면 문이 열린다. 물건을 고른 뒤 셀프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끝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인근 회사의 직장인들이 찾아와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등을 사갔다. 담배는 신분증 확인을 거쳐 판매하는 장치가 구비돼 있었다. B씨는 “편의점에서는 많아야 2, 3개 정도만 사기 때문에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상품 위치를 물어볼 직원이 없는 점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은 다양한 형태의 무인점포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서울 중구 롯데손해보험빌딩에 첨단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핸드페이 △360도 자동스캔 무인 계산대 △바이오 인식 스피드 게이트 △스마트 폐쇄회로(CC)TV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최근에는 자판기만으로 구성한 ‘세븐일레븐 익스프레스’의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고객 수요가 높은 음료·스낵·푸드·가공식품·비식품으로 구분해 약 200개 상품을 구비했다.
무인카페. |
무인카페도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24시간 무인 스터디카페 등이 늘어나고 있다. 로봇을 활용하는 곳도 있다. 달콤커피의 경우 로봇카페 ‘비트’를 전국 10여곳에 설치했다. 비트는 로봇 팔만 있는 부스로, 앱이나 부스 옆 키오스크 스크린을 통해 주문하면 로봇이 음료를 제조한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음식점들은 전면 무인화하진 못하고, 주문·결제에 키오스크를 활용하고 있다.
은행들은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영업점을 줄이는 대신 키오스크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무인점포가 증가하는 이유는 인건비가 비싸지고 있어서다. 일반 식당에서 주문결제용으로 쓰이는 키오스크의 가격은 대당 평균 200만∼800만원 수준이다. 이에 반해 올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아르바이트생 1명이 가져가는 인건비는 1년에 1888만5240원에 이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도에는 1년에 2094만1800원이 들어간다. 1년만 운영해도 아르바이트생 1명을 쓰는 것보다 저렴한 셈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영업장 관리가 더 편리해지는 장점도 있다. 주문을 키오스크로 받을 경우 순서대로 음식을 내보낼 수 있고, 또 각종 주문서나 영수증, 매출 관리를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키오스크가 매출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멕시코 음식 전문점 타코벨 사례 분석 결과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이 직원을 통한 주문보다 20%가량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이 소스 등을 추가로 더 선택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맥도날드에서도 고객들이 창구에서 주문하기 어려운 다양한 토핑과 추가 메뉴를 키오스크를 통해 선택하면서 매출 증가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고객들이 직원 앞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키오스크는 이런 상황을 제거해준다”고 설명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정보기술(IT) 종사자 1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키오스크가 더 편리한 이유로 87%(복수응답)가 ‘대기시간이 짧아서’, 60%가 ‘처리시간이 짧아서’라고 답했다. 상점의 비용절감이 가격 인하 등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커진다.
대면접촉을 꺼리는 이른바 ‘언택트’ 풍조도 무인점포 확산 요인이다. 언택트는 ‘접촉’(contact)과 부정접두사인 ‘언(un)’의 합성어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 전체 응답자의 85.9%가 ‘점원이 말을 거는 곳보다는 혼자 조용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 더 좋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비대면서비스에 심리적 안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언택트를 ‘2018년 10대 소비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꼽은 바 있다.
◆기계에 밀려 사라지는 일자리
일자리 감소는 무인 점포 시대의 숙제다. 통계청 고용자료를 보면 서비스·판매종사자 신규 취업자 수는 매년 줄고 있다. 2013년 전년 대비 평균 21만3000명 늘어나던 것이 지난해 2만7000명으로 증가폭이 급감했다. 올해 들어서는 1∼7월 월평균 1만9000명씩 감소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과)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인화는 주요한 트렌드지만 최근 들어 최저임금 인상 등 이슈와 맞물려 무인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어 문제”라며 “시대 변화에 맞춰 사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와 역할이 생겨나야 하는데 이들이 생기기도 전에 기계로 대체되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의 노력은 물론, 정부도 산업 변화에 대응해 다양한 고용 형태와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유연한 노동시장을 마련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재교육, 전직 지원, 고용 보험 등 사회안전망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