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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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뜨거움, 길에 남기자

관광공사 추천 ‘걷기 좋은 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무더위도 끝이 보인다. 휴가철이 끝나 북적이던 피서지도 한적해졌다. 바다나 계곡에 뛰어들기엔 물이 너무 차게 느껴진다. 아무리 더웠다고 하더라도 떠나가는 여름이 아쉬워진다. 이제 바람이 서늘해지면 땀을 흠뻑 흘리며 걷는 맛도 사라진다. 그래도 여름 끝자락을 느끼기엔 아직 늦지 않았다. 풀 향기, 바다 내음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 늦여름 정취를 한껏 느껴보자. 한국관광공사는 가는 여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을 추천했다.
풀향기, 바다내음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 여름의 정취를 한껏 느껴보자. 사진은 진천 초롱길.

◆강바람, 바다내음에 빠져

논골담길은 강원 동해 묵호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지대에 조성된 산책로다. 묵호항에서 언덕 위 등대까지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묵호등대마을은 하늘이 가까운 전형적인 달동네다. 비록 집은 비좁지만 바다를 마당으로 삼은 덕분에 조망이 일품이다. 동네 구석구석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는 우리나라 어느 벽화마을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지역 화가들이 머구리, 어부 등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 동네를 가리켜 ‘논골’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길이 매우 질척했기 때문이란다. 묵호등대마을에서는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말이 내려온다.
논골담길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그리고 등대오름길을 합쳐 ‘논골담길’이라고 부른다. 논골담길은 묵호등대마을의 벽화와 마을을 둘러보는 길이다. 발길 닿는 대로 둘러봐도 되지만, 3개의 길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영 헷갈린다. 걷기 요령은 논골1길을 따라 올라가서 등대 앞에서 만난 논골2길로 갈아타고, 2길을 따라가다 다시 논골3길로 바꿔 등대까지 오르는 것이 좋다. 논골담길을 따라 가는 동안 바람의 언덕 전망대, 묵호등대 등의 명소와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해발고도 67m 동문산에 자리한 묵호등대는 1963년 6월 처음 불을 밝혔다. 이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묵호항과 해안선은 수려한 경치를 약속한다.

전남 곡성에 살았던 명장 마천목 장군의 이름을 따 조성된 마천목 장군길은 섬진강 자락을 따라 걷는 곡성의 대표적인 걷기길이다. 총 15㎞, 세 개의 코스로 나뉜 마천목 장군길은 ‘2014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섬진강 기차마을과 곡성 최고의 체험 여행이라 할 수 있는 침곡역 레일바이크, 오랜 역사를 가진 가정역 출렁다리 등을 통과하는 길이다. 그 자체로 곡성 최고의 여행코스라 할 수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구 곡성역사(등록문화재 122호)와 폐선 된 전라선 일부 구간을 활용해 꾸민 기차 테마파크다. 이름처럼 온통 기차로 가득하다.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니고, 오래된 철도 위로 레일바이크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섬진강기차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증기기관차 타기다. 증기기관차가 오가는 기차마을∼가정역 구간은 철도와 국도17호선, 섬진강이 나란히 달린다. 기차가 느릿느릿 달리는 덕분에 섬진강 풍경을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침곡역과 가정역 사이 걷기구간의 경관이 아름다워 걷기에 좋다.

충북 진천은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생거진천’이라고도 한다. 진천의 중심부를 흐르는 냇물이 미호천인데, 미호천 상류에는 고려 초기에 축조되어 천년 세월을 버텨온 돌다리가 있다. ‘진천 농다리’다. 농다리는 28개의 교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길이는 약 94m이다.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 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농다리를 위에서 보면 지네처럼 살짝 구부러진 몸통에 양쪽으로 다리가 달려있는 모습이다. ‘농다리’의 ‘농’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 ‘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돼 ‘농’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농다리 건너편에는 초평천을 막아서 생긴 초평저수지가 있는데 민물낚시의 성지로 불린다. 이 초평지의 호반 절벽을 따라 데크를 놓고 농다리와 함께 이어서 걷기 편한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이 ‘진천 초롱길’이다. 왕복 3㎞가 조금 넘는다. 농다리에서 초평지에 있는 하늘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봉암 수원지둘레길

◆찌르르한 풀향기에 취해

경기 포천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한탄강을 따라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기암괴석의 주상절리를 조망하며 걷는 산책로다. 이 중 비둘기낭 순환코스는 비둘기낭 폭포와 한탄강 하늘다리를 시작으로 강 아래쪽 벼룻길과 위쪽 멍우리길을 아우르는 구간이다. 작은 언덕과 계곡, 녹음이 우거진 숲, 강변 자갈길을 통과하는데, 어려운 코스가 아니면서도 구간마다 길이 변화무쌍해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비둘기낭 폭포는 주변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주머니 모양이라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하식 동굴과 협곡 같은 침식지형, 주상절리와 판상절리 등 다양한 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신비로워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지난 5월 개통한 한탄강 하늘다리에선 비둘기낭 폭포 인근 한탄강 협곡을 전망할 수 있다. 한탄강 하늘다리는 길이 200m, 너비 2m 규모의 흔들형 보행전용 다리다. 교량 중앙 바닥면에는 유리바닥을 설치해 아찔함을 경험할 수 있다.

충남 금산 솔바람길 3코스는 2009년 개설됐다. 금산 제원면 저곡리 국민여가캠핑장을 기점으로 봉황산, 소사봉을 거치고 둘레길을 따라 회귀하는 5.4㎞의 탐방로다. 들머리에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어렵지 않게 능선에 들어설 수 있다. 솔향기 가득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 초록으로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자유롭게 흐르는 금강의 풍광을 즐기며 누구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경남 창원 팔용산과 춘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봉암수원지는 일제강점기 옛 마산 지역에 살던 일본인과 부역자들을 위해 조성됐다. 1930년에 완공된 수원지 시설물은 등록문화재 199호다. 수원지 제방 바로 아래 분수가 있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면 무지개가 생긴다. ‘무지개분수’ 앞에서 잠깐 쉬었다면 둘레에 조성된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 조성된 봉암수원지 둘레길은 울창한 숲과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인기가 높다.

둘레길은 크게 세 코스로 나뉜다. 수원지슈퍼에서 출발해 봉암수원지 제방까지가 첫 번째 코스, 봉암수원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두 번째 코스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코스를 거쳐 수원지슈퍼로 돌아오기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팔용산 정상을 거쳐 돌탑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 세 번째 코스다. 팔용산 정상을 지나 돌탑 군락지로 이어지는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세 번째 코스로 마무리하는 데는 4시간 정도 걸린다. 고요히 경치를 즐기며 부담 없이 걷기에 제격인 곳이다. 등산이 부담스러우면 봉암수원지에서 나와 차를 타고 돌탑 군락지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숲 속에 돌탑 약 970기가 있는 풍경이 장관이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